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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리 대봉감

「대포리 대봉감」 ㅡ 감을 먹는다 지리산 자락 대포리 대봉감을 먹는다 벗 趙 선비네 마당에서 대원사 계곡 물소리로 붉어져 열여섯 봉긋한 가슴으로 왔었는데 일주일쯤 지나 한 열하루나 지났을까 콘크리트 아파트 베란다에서 용케도 잘 쏘인 햇볕 몇 줌으로 더 붉어져 곧 터질 지경임에도 음전히 침만 흘리는 녀석 하나 골라 행여 터질까 흘릴까 살살 껍질 벗겨 첫 키스의 조신함으로 입술을 열었는데 혀에 든 세상은 이미 달콤하게 농익은 여인 천하다 이게 어딘가 이 떫고 쓰기만 한 게 널린 세상에,,,,, 말랑한 여인 하나 더 골라 얇은 겉옷 살살 벗기는 중이다 * 대포리: 경남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

2020.12.08

전관예우

「전관예우」 ㅡ 국장하고 나온 친구에게 석 국장! 차관하고 나온 친구에게 김 차관! 교장하고 나온 친구에게 정 교장! 대령하고 나온 친구 섭섭할까 윤 장군! 지점장하고.... 상무하고.... 전무하고.... 사장하고.... 이리 불려지다 나왔으니 혹여 그게 그리울까 내 딴에는 존중 의미 더해 가급적 이리 불렀다 별을 세 개나 달았었다는 아흔이 다 되 가시는, 수수해 보이는 입성에 거들먹거림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안 보이는 A 장군을 뵙고 여러 좋은 말씀을 들었는데, 단호하고 다부지게 귀에 쏙 드는 그 분의 세상 '觀' 중 하나를 기억한다. 자신이 몸 담았던 군대의 例를 들어, 전역했음에도 상호 호칭이 장군! 사단장! 사령관! 총장!, 특히 동기생 간의 이 거북스런 호칭부터 하지 말아야 쓸 때없는 권위가 사라..

나의 이야기 2020.12.07

연예계 먹통

「연예계 먹통」 - 연예인 뿐 아니라 그들 가족까지 스크린을 점령해 웃고 떠드는 시대다 연속극 하나 제대로 보는 게 없고 철 지난 범죄 수사물이나 찾아 시청하며 메이저리그 야구와 여행 프로그램이나 보는 주제이니 수십 수백억을 몸뚱어리 하나로 벌어들인다는 이 시대의 위대한 엔터테이너들! 그들의 이름을 절대 알리가 없다 그나마 60년대 노량진 극장 간판 그렸던 땅 주인 아들이라 어린 나이 공짜 영화 구경을 많이 해서 최민수를 보면 멋쟁이 신사 최무룡이 박준규 보다는 주먹 액션이 멋 있었던 박노식이 허준호 보다는 개성있는 연기파 허장강이 먼저 떠오른다 그렇지만 이들 2세조차 이젠 주류가 아니다 누가 15% 노령인구에 속한 꼰대 아니랄까 TV 패턴을 바꿀 생각이 시쳇말로 단 1도 없다 술자리에서 영서 아우는 불..

2020.11.30

유전遺傳

《인공지능이 지은 시》 74쪽 「유전遺傳」 관악산 산행이 하루의 첫 일과였던 늘그막 아버지 친구로부터 걸려온 따르릉! 첫새벽 모닝콜 서울대 입구 어디서 만나고 오늘 누가 온다 했고 아침은 어디서 먹고 찻집은 어디로 가고…… 통화 중에 간간이 들리는 목 칼칼한 아버지 웃음소리 등산복 약수통 배낭 챙기는 분주한 어머니 치맛단 소리 대청마루 서까래에 붙어 있던 고요가 시나브로 쪽마루 타고 쫓겨나 건넌방 거쳐 아랫방 문풍지를 붕붕 뚫더니 끝방에서 곤히 자고 있는 내 이불깃에 들어 부서졌다 아버지 소풍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시 씁네!’ 하는 그럴듯한 명제로 새벽 맞는 나는 시 몇 줄 긁적여 새벽잠 사라진 벗들과 문자질이고 오늘은 무얼 하고 누굴 만나고 무얼 먹을지 아버지보다 더 많은 새벽 수다를 떨고 ..

2020.11.16

비대면

「Non-Face-To-Face 1」 조남현 화가 비대면 ㅡ 한 없이 다정했던 그대의 눈길에 처음 가식이 느껴지기 시작 했을 때 나의 심장에는 찬 기운이 돌았지만 얼마간 이성을 저울 위에 올린 뒤에야 비로소 사랑의 희망을 접고 단념이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절벽 위 폭풍 같이 격정적인 포옹으로 숨 가쁘게 몰아쳤던 우리의 순간들이 비밀을 기억하는 불멸의 공간에 저장되어 색 바랜 책장을 셀 수 없이 인쇄 중이지만 간절히 바라건대,,,, 한때의 바람으로 그냥 지나가 주기를 솔직히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은 미련을 모두 버렸다 이리 탁 털어 말하지 못하겠지만 과거를 핑계로 다시 마주하기는 어려워 이리 그대를 향해 고개를 돌리오 * 조남현의 누드 「Non-Face-To-Face 1」를 감상하고

2020.11.12

성세낙사

「무야의 푸른 샛별」 76쪽 성세낙사 하늘 열려 구름 웃고 강은 바다로 유유히 꽃은 시부저기 피었다 지고 새들은 산과 들 자유로 날고 비도 순하게 오시고 눈도 탐스레 나리시니 봄·여름·가을·겨울 모두 사랑이라 사람들은 온통 착한 일만 하니 먹고 입을 게 지천인 세상 여기저기 태평성세 노랫소리로 탄생 알리는 잦은 고고지성 만발한 함박꽃웃음 여기저기 * 盛世樂事: 태평한 세상에 즐거운 일 ** 시부저기: 별로 힘들이지 않고 거의 저절로

2020.11.06

춤을 추고 싶다

「무야의 푸른 샛별」 106쪽 춤을 추고 싶다 노랗고 붉은 것들이 여명의 태양처럼 춤사위에 뭉게뭉게 묻어나 부드러운 놀림의 어름새로 누군가에겐 베풂으로 누군가에겐 끌림으로 누군가에겐 파트너로 강하지 않아 지치지도 않는 그런 춤을 안단테칸타빌레! 빠른 시간들을 느리게 다독이며 가슴 깊은 상처들 끼리끼리 어우렁더우렁 춤을 추고 싶다 나를 위한 춤을 * 어름새: 구경꾼을 어르는 춤사위

2020.11.02

구박받는 삼식이

「구박받는 삼식이」 48쪽 구박받는 삼식이 - 광삼씨는 29년간 꼬박꼬박 출근해 열심히 일했다 그 덕에 새끼들 공부시키고 알뜰살뜰 마나님 모시고 그냥저냥 남들만큼은 살았다 올해로 퇴직 이 년 차 쓰고 남을 정도로 넉넉히 모아 놓은 돈은 없지만 공부 끝낸 아이들 직장 다니니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 삼십 년 경력 ‘살림의 제왕’ 마나님께서는 출근 안 하고 집에 있는 서방이 측은했던지 처음 두어 달 정도는 점심밥도 차려 주셨다 퇴직 후, 딱히 정해 놓고 갈 데 없는 광삼씨 아침 운동 뒷산에 올랐다가도 돈도 아낄 겸 꼭 돌아와 집밥을 먹었다 책 보러 도서관에 갔다가도 마나님도 볼 겸 꼭 돌아와 집밥을 먹었다 학교, 동네, 사우나, 다양한 친구 모임 컴퓨터배우기 봉사활동 헬스클럽 등등 잡사雜事에 하루 일정 빡빡한 ..

2020.10.26

지하철역 앞 버스정류장

「무야의 푸른 샛별」 58쪽 지하철역 앞 버스정류장 시시한 건 반복되어진 사소하고 이기적 말들이 지루해지기 때문입니다. 있는 돈 자랑하려니 암내 난 꿩 소리로 들려 누군가 총 들고 쏘려 올까 겁나 그 언저리만 빙빙 돌다가 구린 입도 못 떼는 모양, 좋은 호텔에서 온 식구가 다 퍼질러 실컷 자고 먹고 해 놓고 겨우 한다는 말이 그 호텔 밥맛이 어쩌구저쩌구. 뭐 하나 읽는 게 귀찮아 나이 육십 줄에 텔레비전 연속극이나 보는 게 전부입니다. 그래도 어디 가서 말발 죽는 건 싫어서 아무도 믿지 않는 소싯적 공부 잘했다는 얘기 바락바락 핏대 세워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하고 지겹게 듣는 이들 인내를 시험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지 공허한 하늘에 홀로 머리 박기란 느낌이 드는 순간 제풀에 제가 죽을밖에. 먹고 사..

2020.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