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옥 화가 26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한 여섯 살 먹었을까  노란 날개 달린 발레복 입은  예쁜 여자아이가  빨간 브라우스 입은 예쁜 엄마와  룰룰랄라 버스에 올라서는  내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아이가 쫑알거리는 말이  “난 할머니가 너무 좋아  할머니 오시라고 전화해야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엄마가 하는 말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 시집 《가엾은 영감태기(2024,예서)》 중   * 시니어들의 애환을 노래한 시집 『가엾은 영감태기』가 MZ세대 포함 3, 40대의 공감을 얻어 기쁜 마음이 큽니다.

2024.09.15

도리언 그레이 증후군

도리언 그레이 증후군ㅡ 야속한 청춘은 붙든다고 머물지 않는다 오가는 모든 것들은 순리다 김혜수의 입술보다 붉었던 장미도 시르죽다 떨군다 굵은 주름이 얼굴에 파이고 팔뚝에는 검버섯이 여기저기 낙서를 하는 중에도 어깨는 왜 이리 기울고 걸음걸이는 또 왜 이리 비틀대는지 그럼에도 모르는 척 부러 자뻑(?)중이다 꼭 끼는 바지에 파란 셔츠를 입고 여인들을 기웃거리다가 딴에는 너스레를 떤다고 한 여인에 다가가 낮게 깔린 억지 음성으로 던지는 말이 "차 한잔 하실까요?" 잊혀진지 오랜 쌍팔년도 멘트를 날린다 세상이 나를 방관 중인 것을 모른다 머리를 볶고 눈꺼풀에 메스를 대는 것도 모자라 종국에는 쓸모없어질 비아그라에 목숨을 건다 올해에서 내가 태어난 해를 빼라 10 20 30 40 50 60 70... 선생님 내..

2023.08.27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62】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62】 2023년 8월 25일 7시(매달 마지막 금요일) 종로구인사동길52번지인사14길 詩/歌/演(02)7206264 쥔장:김영희01028203090/이춘우01077731579 1호선종각역→안국동방향700m 3호선안국역→종로방향400m 생자 시인을 따르며 행동하는, 전국에 계신 『진흠모』 님들의 보이지 않는 생자 시인을 향한 흠모의 '情'은 감동적이고 때로는 눈물겹습니다. 큰 울림 없는 세상에 둘도 없는 시 철학자 「생자」를 공유하려는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진행 출판물들을 스무 해 가까이 책임지고, 동영상을 만들어 널리 알리고, 일주일에 한 번 시인 댁을 찾아 동무해 드리고, 수 년 째 멈춤 없이 맛난 음식이나 과일을 보내 주시는 분들에, 시인의 머뭄 장소에 숙..

2023.08.19

詩集살이

詩集살이 ㅡ 그냥 그렇고 그런 남들 하는 거 다 하고 남들 다니는 거 다 다닌 인생이었으면 난 시를 안 썼다 으흠 그래... 실패한 인생이라고까지는 말자! 성공하지 못해 그렇다 핑계를 대자 먹고 산 게 파는 일이요 구멍가게 운영해 본 게 다이니 묻는다, 종종 오랜 지인들이 시는 왜 쓰는데? 물론 돈 나오는 일도 아니고 그걸 기대할 정도의 멍청이는 아니다 그럼에도 나를 형이라 부르는 J가 자식 혼사에 내 시집을 하객 답례품으로... 감동 먹어 절절히 감사를 표하니 "아이고 형님, 냉면 한 그릇 값도 안 되는 시집이었는데, 사돈 하시는 말씀이, 역시 우리 사돈은 수준이 높다네요" 시집살이도 이만하면 할만하지 않은가! 먹고 산 게 파는 일이었다

2023.07.01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60 ‘생일잔치’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60 ‘생일잔치’ 】 2023년 6월 30일 6시(매달 마지막 금요일) 종로구 인사동길52번지 인사14길 詩/歌/演(02) 720 6264 쥔장:김영희010 2820 3090 /이춘우010 7773 1579 1호선 종각역→안국동 방향700m 3호선 안국역→종로 방향400m * 6시 시작합니다 * Dress Code: Formal Dress(정장)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59 5월 26일 스케치】 1. 며느리ㅇㅇ : 양숙 며느리밥풀 며느리배꼽 며느리밑씻개 이름만 들어도 팔을 긁힌 듯하고 너무 불쌍해서 눈물 나려 합니다 지엄하신 시어머님 어머니 당신도 며느리였는데.... 자랑스러운 아들과 같이 사는 여자이고 사랑하는 손자를 낳아줄 여자인데 저세상에서 드실 제삿밥을 차..

2023.06.24

행복

행복 축 처진 어깨로 술이 고픈 배를 움켜쥐고 까무룩한 도심의 밤을 품었다 별이 한강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파란 소주병들 붉은 와인 병들 불꽃 만발하여 둥둥 떠다녔다 소주 한 병 와인 한 병 건졌다 한 맛은 밥 씹는 기분이고 한 맛은 꽃 같다 갈증을 덜어낸 어깨로 달빛이 기대왔다 빛에 향긋한 여인의 젖내가 어릿어릿 강물 빛 반사된 은결로 살며시 안았다 아직 까무룩 밤은 저만치 있고 꺼내지 않은 술병들은 강물 속 둥둥 빛나고 빛을 꼭 품은 사내는 이제야 행복해졌다

2023.06.05

시의 능청

시집 《'무야의 푸른 샛별' 중, 2015 황금알》 시의 능청 - 시 읽으러 가는 인사동 종각역 귀퉁이 여기저기 종이박스로 관棺을 만들어 하잘 것 없는 보따리 풀어놓고 때 묻고 낡은 신발짝 깔고 앉아 나뒹구는 소주병 벗 삼아 풀린 눈으로 행인들 바라보며 죽는 연습이 한창이다 YMCA 앞 가로수에 핀 매화 꽃상여로 제격이다 시도 죽는 게 두려운지 알고도 모르는 체 짐짓 막걸리만 마신다

2023.03.22

부러운 놈

시집 《'구박받는 삼식이' 중, 2011 우리글》 부러운 놈 - 잘잘 끓는 아랫목에 누워 마누라 엉덩이 통통 두드리다 조물조물 허리라도 안을라치면 실쭉 눈 흘겨 이부자리 밖으로 톡 튕겨 빠져나가며 “아침밥 지어야지” 그 한 마디가 남긴 작은 공간의 갑작스런 썰렁함이지만 가진 것 많지 않은 꽃자리 좁은 남편에겐 가슴 그득 큰 행복이다 별 볼일 없는 쥐꼬리 월급쟁이 하릴없는 소시민 지아비를 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한다는 지지리 공부 못하고 얼굴까지 못생긴 아들놈이지만 어깨가 부스러지도록 안아주고 싶고 곧 늙어 힘 빠질 우리 아부지 제일 좋아하는 술 안 받아주는 놈하고는 절대 결혼 안 하겠다는 딸년은 가슴 속에 넣고 다니는 또 다른 큰 행복이다 잘사는 놈이 10박 며칠 유럽여행 가자 해도 내 꼬락서닐 알아야지 ..

2022.12.18

잊어버렸다

시집 《노량진 극장 중, 2008, 우리글》 잊어버렸다 - 우연히 본 내 손등 주름이 쪼글쪼글한 게 영락없는 영감님 손이다 봄 타서 그렇지 하고 잊어버렸다 귀밑 흰 머리카락이 왜 이리 꼬불거리고 일어나는지 그러다 말겠지 하고 잊어버렸다 눈가 다크서클이 기분 나쁘게 조금씩 퍼지면서 세력을 확장해도 거울에 뭐가 끼었나 하고 잊어버렸다 운전하다 뒷좌석 물건을 꺼내려 팔을 돌렸는데 삐끗 하더니 고장이 났다 많이 아프지만 그러다 말겠지 하고는 잊어버렸다 길가다 낯이 아주 익은 사람 만나 반갑게 악수하고 헤어졌는데 새삼 ‘저 사람 누구지? 누구더라?’ 기억이 없다 내 친구도 그렇다고 걱정 말라니 잊어 버렸다 오줌발 힘없어 숨 몰아 시간 끌다 질질 나오니 짜증난다 집안 형이 그러는데 다 그런 거라기에 잊어버렸다 아파..

2022.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