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엾은 영감태기 7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한 여섯 살 먹었을까  노란 날개 달린 발레복 입은  예쁜 여자아이가  빨간 브라우스 입은 예쁜 엄마와  룰룰랄라 버스에 올라서는  내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아이가 쫑알거리는 말이  “난 할머니가 너무 좋아  할머니 오시라고 전화해야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엄마가 하는 말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 시집 《가엾은 영감태기(2024,예서)》 중   * 시니어들의 애환을 노래한 시집 『가엾은 영감태기』가 MZ세대 포함 3, 40대의 공감을 얻어 기쁜 마음이 큽니다.

2024.09.15

영허(盈虛)

=영허(盈虛)   1. 위안(慰安)  아파하지 마시게  그럴수록 더 아프다데  슬퍼하지 마시게  그럴수록 더 슬프다네  아프다고 마냥 울다간 눈이 빠질 것이고  슬프다고 넋 놓다간 혼(魂)이 빠질 것이네  달도 차다가 기울고  태양도 비추다 사라지듯이  잿물 삭여 잿빛 우려내듯  조금만 기다리고 조금만 참아야지  어차피 흐르는 건  모났다가 죽어가는 것이  인생살이 아니런가    2. 동감(同感)    알고 있네, 나도 알고 있다네  살다 보니 맥없이 엎어져  몇 바퀴 돌아 뒹굴다 깨지고  흐르는 핏물도 맹물인가 하였고  혼 빼고 앉았다가  잠시간의 제정신에  와락 울고 싶어지는데  말라 나오지도 않는 눈물 콧물을  배출도 못하는 서러움은  왜 이리 야속도 한지  시간은 ‘세월’이라는 풍류로 포장되어 잘..

2024.09.05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74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74‘】 8월 30일 6시 30분 마지막 금요일 종로구인사동길52번지 인사14길詩/歌/演(02)7206264쥔장:김영희 01028203090/ 이춘우010777315791호선종각역→안국동방향700m3호선안국역→종로방향400m 274 낭송 예정자: 김미희 지현, 김효수, 김문자, 류재호, 김중열, 조철암, 이원옥, 김경영, 박산, 이생진.     생자의 친구 김효수 ㅡ 박산   툭툭 건네는 말이 껍질 덜 벗겨 낸 밤송이같이 거칠지만한결같은 생자와의 우정은두리안 속살같이 하얗게 꼭꼭 잘 씹힌다춥고 바람 부는 날에도장마에 습진 날에도도봉동 나들이 단짝이고인사島 어묵 먹기 짝꿍이다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73‘ 스케치】(7월 26일 6시 30분 마지막 금요일)..

2024.08.24

'가엾은 영감태기' 함께 감상하기

=박산 시집 《가엾은 영감태기》 함께 감상하기                                                   - 영담 박호남(문학박사, 한국공연예술원 원장) -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인사도(仁寺島)」 모꼬지를 주도하시는 박산 시인의 시집을 받고, 아직 문인으로 이름을 내지 못한 내가 어떻게 시를 읽고 글을 써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시집을 읽으며 시인과 친근감과 공통점을 많이 발견하게 되었다.   먼저 시인이 성장하고 자란 지역이 ‘노량진’이라 어린 시절 그 지역에 대한 묘사가 아주 실감나게 다가왔다. 나도 대방동에 있는 ‘강남중학교’를 다녔기에 노량진 철교와 여의도 비행장은 비교적 자주 가던 곳이다.   둘째, 사업을 하다 실패를 한 쓰라린 경험과 이..

2024.08.17

노들나루 1960’s

=노들나루 1960’s -   아이야한강 철교 아래 은빛 모래밭철길 넘으려는 기적소리 들리는거기로 가자 아이야빨간 난닝구 유신이가 모래성을 쌓고고물상집 국영이가 대나무 낚시 놓는거기로 가자 아이야샛강엔 능수버들 화들짝 푸르르고여의도 비행장 비행기 구름 향해 오르던거기로 가자 아이야양화진 강바람에 밀려온 고깃배가마포나루 서강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거기로 가자 아이야삼각빤스 바람에 헤엄치다가들어와라! 목청껏 날 부르는 형이 있는거기로 가자 아이야‘높은절이’에 아지랑이 모락거리면숭어떼 펄쩍펄쩍 뛰어오르는 샛강거기로 가자 아이야수염이 긴 할아버지 두루마기 소매에서사육신묘지 제사떡이 불쑥불쑥 나오던거기로 가자 아이야미군 MP와 사는 누나 둔 호태와 놀다씨레이션 깡통을 깠다가 고기 횡재를 했던거기로 가자 아이야국군..

2024.08.11

초매(草昧)

=초매(草昧)   이제껏 내가 살아온 익숙한 공간이라는  누군가의 말에도  지금 눈앞이 새삼스럽다 여겼는데  과거라 말하는 때의 기억이 는개를 타고 왔다    한동안 못 봤던 아버지가 웃으며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얹고는 셀카를 찍는다  1995 전(前)에는 스마트폰이 없었는데요?  그냥 웃으신다  순간, 바닥에 떨어진 스마트폰이 산산이 부서져  풀 되고 나무 되고 돌멩이가 되었다    한강이 보이더니 63빌딩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시간들이 바람을 불러  억새를 매질하고 있다  잉잉! 잉잉! 잉잉!    진땀에 이마와 겨드랑이가 촉촉해졌다  느슨하게 풀린 허리띠를 졸라매도  바지춤은 살을 빼며 더 헐거워졌다    정신을 차리려다 정신 차릴 이유를 결국은 못 찾았다    태양을 몰..

2024.08.04

가엾은 영감태기

가엾은 영감태기 - 조막만한 몸도 덩치라고 어깨 벌려 걷는 팔자걸음이나마 제멋에 취하고 내가 왕년에로 시작하면.... 유도했다 태권도 유단자다 산에 가면 날다람쥐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간에 이 허세 달고 사는 기분도 괜찮은데 예순 훌쩍 넘어 그가 아쉬운 건 딱 하나 외롭다는 거다 의리 상실하고 5년 전 먼저 소풍 떠난 마누라가 밉다 하나 있는 딸년을 작년에 여의고 나니 집에서 밥 해 먹는 일도 궁상맞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문화센터 스포츠댄스 배우러 갔다가 반년 만에 교양 만점 배 여사를 만났다 붉고 짙게 바르는 화장이 아니어서 좋고 꽉 끼는 바지 대신 치마를 입으니 보기에 여유로워 좋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함께 마셔서 좋고 톡 까놓고 통성명은 안 했지만 얼핏 맞춰 보니 나 보다 한 살 어려 또래인 것..

2022.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