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ㅡ 시인이 섬에 갔다 지난 번 발자국을 찾다가 파도가 한 일 깨닫고는 낮은 모래 언덕에 사는 메꽃에게 그간의 안부 물었더니 나도 보고 싶었다 와락 반기는데 키 작은 순비기나무는 바람 불러 크게 몸을 흔들고 여러 해 산 통보리사초는 나잇값 하느라 웃고만 있었다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 . . 그리움은 땅 속에 묻혀도 보인다구요 대나무로 보이고 메꽃으로 보이고 순비기나무로 보이고 통보리사초로 보이다가 금방 모래밭에 파묻힌다구요 시인이 세월의 발로 쓴 이 시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시가 功을 바라는 건 결코 아니다 지금 이 섬에는 연예인 몇이 밥 먹고 떠들다 간 그 발자국을 찾는 이들로 넘친다 갯메꽃 순비기나무 통보리사초는 여전히 시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