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노량진 극장 중, 2008 우리글》 무직無職의 세월 - 그 해 겨울 참 추웠다 눈 뜨고 일어나는 아침이 시렸다 갈 곳 없는 가장은 모든 게 비굴해졌다 양치질조차도 힘이 없으니 입안 거품에 신이 없고 세수소리 조차도 물방울이 잠잠하다 86년 그 해 겨울 바람이 몹시 불던 날 구겨진 자존심에 포장마차 소주가 다섯 병째 위장에 채워졌다 이상하리만큼 술은 더 이상 취하지 않았다 새로운 기운이 허허롭게 내 허파를 간지럼 태울 때 비로소 찡그린 얼굴에 알 수 없는 평화가 찾아왔다 어둑어둑 하늘은 그 매서운 바람 속에서도 뭉게뭉게 구름을 품고 있었고 숨어있는 달 모양으로 움츠러든 내 목은 스승인양 그 구름을 따르고 있었다 스무 해도 더 지난 이 겨울은 한 병의 소주에도 취하고 떠있는 구름에도 관심이 없다 잊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