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노량진 극장 중, 2008 우리글》
무직無職의 세월 -
그 해 겨울 참 추웠다
눈 뜨고 일어나는 아침이 시렸다
갈 곳 없는 가장은 모든 게 비굴해졌다
양치질조차도 힘이 없으니 입안 거품에 신이 없고
세수소리 조차도 물방울이 잠잠하다
86년 그 해 겨울
바람이 몹시 불던 날
구겨진 자존심에
포장마차 소주가 다섯 병째 위장에 채워졌다
이상하리만큼 술은 더 이상 취하지 않았다
새로운 기운이 허허롭게 내 허파를 간지럼 태울 때
비로소 찡그린 얼굴에 알 수 없는 평화가 찾아왔다
어둑어둑 하늘은 그 매서운 바람 속에서도
뭉게뭉게 구름을 품고 있었고
숨어있는 달 모양으로 움츠러든 내 목은
스승인양 그 구름을 따르고 있었다
스무 해도 더 지난 이 겨울은
한 병의 소주에도 취하고
떠있는 구름에도 관심이 없다
잊혀진 씀벅씀벅한 추억은
이맘 때
간혹 그 무직의 세월이 새삼스러울 뿐이다
添 :
스무 해 훨씬 전 그 해 겨울 12월
사업에 실패한 나는 실업자였다
아침에 일어나 갈 데가 없었고
앉아 있을 책상이 없었다
그 때 놀아준 친구가 아직도 고맙다
그 때 술 사준 동료가 아직도 고맙다
지금 사업에 실패한 자여
실직하여 놀고 있는 자여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악한 세월은 약이요 그리고 진보 일러니
이십 년 후 그대는 분명코
지금을 조롱 할 터이니
이 한 번 악물어 보시라
분명 좋은 날이 오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