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급난지붕(急難之朋)

박산 2025. 3. 11. 07:57

 

松心石性(송심석성) / 서예 에술가 운양 이영준 작품 ㅡ 늘 소나무와 같은 푸르름으로     돌과 같이 변치 않는 마음으로

 

 

급난지붕(急難之朋) -

 
일찍이 나이 서른하나에,

세상 물정 모르는 멍청이가 벌린 쩐빵(사업)에

아부지 집 담보 넣었다가 쫄딱 들어먹었습니다.

 
당장 아부지 90평짜리 한옥 한 채가 담보로 날아갔지요.

여기저기 둘러쓴 개인 빛도 남았지요.

이럼에도 제 무능력은 인정 못 하고

눈에는 독기만 잔뜩 올라 핏발만 서 있던

그때가 내 인생 가장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그래도 내게는 의리 있던 벗 몇 있음에 고맙기 그지없는 인생입니다.

 
사실 당시에 이들에게 돈 얘기는 입도 뻥끗 안 했었지만….

 
다섯 살 때부터 아래윗집 살았던, 지금은 고인이 된 M은

마침 물려받은 집을 판 돈이 있다고

일단 급한 불 끄라고 500을 보태주었고

가정 있는 월급쟁이 J는 있는 대로 다 끌어모았다며 800을

이 사태를 옆에서 지켜보았던 불알 벗 C는 200을 주었습니다.
(얼마나 감읍했으면 40년 된 이 액수를 생생하게 외우고 있습니다.)

 
목동 아파트 30평 한 채에 3000만원 안팎이던 시절이지요.

물론 훗날 모두 갚았지만,

그때 그 속 깊은 의리의 감성을 평생 마음속 깊이 담고 삽니다, 
일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후 다시 시작한 직장생활과 사업에서 어려움에 부닥치면 그때 그 생각으로 버텨냈습니다,

‘그래도 내겐 이런 벗들이 있노라고!.’

물론, 나름 큰 부자였던 어떤 이는 지레짐작으로 내 전화를 고의로 회피했었습니다. 


곤궁한 삶을 살았던 조선의 문장가 연암 박지원이, 자신의 곤궁함을 안부 편지를 빗대어 열세 살이나 어린 제자이며 문우인 박제가에게 보내니, 그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ㅡ 열흘 장맛비에 밥 싸들고 찾아가는 벗이 못 됨을 부끄러워합니다. 공방孔方 2백을 편지 전하는 하인 편에 보냅니다. 

    호리병 속 일은 없습니다. 세상에 양주의 학은 없습니다 ㅡ (정민의 '不狂不及'에서).

아마도 돈 꿔달라며 술까지 챙겨 달라고 호리병까지 하인 편에 보낸 듯 합니다만, 공방(네모난 구멍이 있는 동전) 2백 냥은 보내는데 호리병 술까지는 못 보낸다고 정중하게 익스큐즈하며, 돈 많고 권세까지 누린다는 고사 양주자사楊州刺史를 인용했습니다.


또한, 『명심보감』 「교우편(交友篇)」에는 '급난지붕(急難之朋)' 이란 말이 나옵니다.

‘어려울 때 친구를 안다.’

 
酒食兄弟千個有(주식형제천개유)

술 마시고 밥 먹을 때는 형 동생 하는 이가, 천 명이나 되지만/

-골프 치고 함께 놀러 다닐 때는 죽이 맞아 죽고 못 사는 양 노는 이 부지기수지만-

 
急難之朋一個無(급난지붕일개무)

급하고 어려울 때 막상 나를 도와주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다/

-이번만 막으면 되겠는데…. 그래도 같이 논 세월이 얼마인데,,, 쟤는 도와주겠지, 얘는 도와주겠지, 한 명도 없다-

 
이제는 ‘急難’할 일도 없는 나이가 되었지만

지금도 이런 고마운 이들과 함께 살고 있고, 살았었다는 기쁨이 큽니다. 

 

갤러리에서(김명옥 화가 찍음)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자를 위한 냉정한 평가  (7) 2025.03.02
詩와 술  (5) 2025.02.28
푸항또우장(阜亢豆奬) 줄 서서 먹기  (45) 2023.11.24
2016 「방탄소년단」  (11) 2023.06.08
Thanks, Google!  (6) 2023.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