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술 -
소주 빼갈 위스키 코냑을 거쳐서
작금의 막걸리에 이르기까지의 酒史를
유식한 척 들먹이며
대단한 애주가임을 자처하는 내가
시를 스무 해 넘어 쓰며 살아 보니,
험한 세파를 헤쳐 나가려는 힘겨운 몸짓으로
술 핑계 우선이요, 시 핑계는 차선이 아니었나….
이리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사실 지금은 술 체력이 달려 고작 막걸리 한 사발 마시는 정도입니다.
일찍이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는
아들이 술 마시는 걸 보고는
- 네 아비 늘 취한 것 배우지 마라
한평생 남들이 미치광이라 말한단다
늘 취한 아비인 자신 걱정은 없고, 아들의 술 마심을 걱정했습니다.
또 다른, 진정 좋아하지만
조선의 실속 없는 천재 시인 石洲 權韠(권필)은
호방하고 매사 얽매이지 않는 성품으로 벼슬길 마다하고
낭만이란 호기로 현실 풍자시 몇 자를 술김에 썼다가
끌려가 죽도록 곤장 맞고 떠나는 유배길에
그를 아끼는 독자들이 따라와 받아준 송별주를 마시다가
동대문 밖 객줏집 어디선가 곤장 독으로 결국 죽음을 맞았습니다.
술김에 쓴 시로 맞고 술로 오른 곤장 독으로 죽은 셈이지요.
그의 시 「戱題」에서는
세상 다 산 사람처럼 태평하게 이리 읊었습니다.
詩能遣悶時拈筆/酒爲澆胸屢擧觥이라
- 시는 고민을 덜어주어 종종 붓을 잡았고
술은 가슴을 적셔주어 잔을 들었다.
시 쓰는 이유와 술 마시는 이유를
적어도 이 정도는 표현할 줄 알아야만 마시고 쓴다는 생각이 듭니다.
21세기 시 모꼬지를 기웃거리다 만나
꽤 오래 詩友로 교류했던 A, B 그리고 C는
시 듣고 쓰는 일이
적어도 내 보기에는
술 마시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내가 16세기 권필의 위 시를 인용해 쓰자면
- 寫詩是我的第一個安慰
同情某人
如果酒精浸透了我的詩歌
還有什麼比這更大的快樂呢?
一個不能喝酒的人怎麼寫詩呢?
시는 나의 위안이 우선이요,
누군가와 공감하기 위함이고,
술이 내 시를 적셔준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나?
술 한 잔 못 마시는 샌님이 어찌 시를 쓰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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