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노량진 극장 중, 2008, 우리글》 잊어버렸다 - 우연히 본 내 손등 주름이 쪼글쪼글한 게 영락없는 영감님 손이다 봄 타서 그렇지 하고 잊어버렸다 귀밑 흰 머리카락이 왜 이리 꼬불거리고 일어나는지 그러다 말겠지 하고 잊어버렸다 눈가 다크서클이 기분 나쁘게 조금씩 퍼지면서 세력을 확장해도 거울에 뭐가 끼었나 하고 잊어버렸다 운전하다 뒷좌석 물건을 꺼내려 팔을 돌렸는데 삐끗 하더니 고장이 났다 많이 아프지만 그러다 말겠지 하고는 잊어버렸다 길가다 낯이 아주 익은 사람 만나 반갑게 악수하고 헤어졌는데 새삼 ‘저 사람 누구지? 누구더라?’ 기억이 없다 내 친구도 그렇다고 걱정 말라니 잊어 버렸다 오줌발 힘없어 숨 몰아 시간 끌다 질질 나오니 짜증난다 집안 형이 그러는데 다 그런 거라기에 잊어버렸다 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