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행복한 낙원

박산 2021. 4. 29. 10:53

'Moonlight Shower' 김명옥 화가

 

 

「행복한 낙원」


자연인이라는 TV 프로그램을 가끔 봅니다. 사연을 들어보면 세상 사는 일에 지쳐 선택한 순수 자연에 의탁해 살아가는 쉽지 않은 그들의 삶의 고뇌가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자연인에게는 老莊의 玄學의 경지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단어에 으뜸은 행복하다, 편하다, 자유롭다, 여기가 나만의 낙원이다 라는 자기만족의 말입니다. 일맥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누구나 각자가 추구하는 만족의 정도는 다 다르니 말입니다.


주제를 좀 벗어나는 듯한 말입니다만, 아내가 오래전에 실버 잡지사(노인 잡지) 기자 노릇할 때 당시 수도권에 위치한 고급 실버타운을 취재했었습니다. 의사와 간호사가 상시 대기 중이고 삼시 세끼가 훌륭한 자체 식당에서 제공되니 밥해 먹을 일도 없습니다. 여기 입주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자신의 재력으로 입주한 그룹과 자식 잘 두어 그 덕으로 입주한 실버들입니다. 전자는 아침 한 끼를 먹으려 해도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식당 출입을 하며 레크레이션 역시 골프 악기 배우기 단체 영화 감상 해외여행 등을 즐깁니다. 반면 후자의 노인들은 밥 먹고 생활하는 일상 모든 게 다 남을 의식하고 살아야 하는 부자연스런 생활로 고역 중에 상 고역입니다. 전자들은 여고 동창이다 뭐다 해서 여기서도 끼리끼리 몰려 대화하고 다니며 맛난 외식집을 몰려다닙니다. 후자의 실버들은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로 결국 몇 달 살지 못하고 자식들에게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하고는 SOS를 보냅니다. 성공한 자식들이 부모 효도를 가장한 이 고급 실버타운은 자신들의 성공에 대한 명예와 과시를 위한 것이었지요. 이 실버타운은 누구의 행복한 낙원이었을까요.


애리조나주 선 벨리에는 55세 이상 억만장자들만 사는 실버타운이 있습니다. 골프장 수영장 낀 고급 주택에 아름다운 자연까지 심지어는 자동차 제한속도조차 25km로 소음을 차단해서 은퇴한 부자 노인들에게는 뭐 하나 부족한 게 없는 최상위 환경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매 발병률이 일반 지역보다 높았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한국의 이시형 박사께서 직접 현지를 방문해 연구를 했습니다.


그 결과는 놀랍습니다. 적당한 스트레스와 고민하며 사고하는 걱정과 생활의 변화가 없는 삶이 심신의 나태로 치매를 불러온다는 사실입니다.


지상에 진정한 낙원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진정한 개인의 행복한 낙원은, 돈을 쌓아 놓고 돈의 노예가 되는 것 보다는 작은 재산 일지라도 능력껏 알뜰살뜰 소비하고 사는 것이고 어떻게 하면 지금 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적당한 긴장감이 불러온 걱정으로 인한 적당한 스트레스로, 힘이 들더라도 아웅다웅 부대끼며, 오늘은 빈대떡에 막걸리를 마시고 내일은 코냑에 스테이크도 썰어 먹는 입맛의 자유로운 변화를 즐기는 것처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여기가 바로 '행복한 낙원'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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