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생애 첫 아르바이트

박산 2021. 7. 12. 07:39

삼척 <竹西樓  미수 許穆의 '第一溪亭' 현판 앞에서>, 벗들과 함께 2021 여름

「 생애 첫 아르바이트 」

1963 아니면 1964년인가 초등학교 때 첫 아르바이트를 해 봤다. 아이스크림이란 제대로 된 영어 이름을 모르던 시절 노량진역 앞에 '깨끼집' 밀양당이 있었다. 지금처럼 우유나 고급 당분이 들어가는 아이스크림은 아니었지만 '깨끼' 혹은 '아이스깨끼'라고 부르는 사카린 단맛이 강한 얼음과자였다. 이 깨끼집 밀양당에서 주로 소년들이 깨끼를 스티로폼 상자에 받아 어깨에 메고 다니며 길거리와 골목골목을 다니며 막대아이스깨끼를 팔았다.  

동네 콩나물 공장집 아들 정병택이가 이 깨끼장사를 해서 솔찬히 돈을 벌었는지 만화광이었던 내 만화 가게 비용을 종종 대줬다. 푹푹 찌는 무더위가 한창인 어느 날, 깨끼장사를 해서 좋아하는 만화 가게 비용을 벌고 싶어도 동네 유지 소리 듣고 사는 아버지가 무서워 엄두도 못 내고 있는 내게 병택이가 꼬셨다.  

이른 저녁을 먹고 어스름 어둠이 나타날 즈음 병택이와 간첩 접선하듯 만나 밀양당에 가서 '경력자 병택이'는 100개 나는 50개를 통에 넣었다. 물론 경력자 병택의 신용 보증(?)으로 선금 없이도 깨끼를 깨끼통과 함께 무난히 받았다.  

깨끼통을 메고 거리로 나왔는데 혹여 아는 누군가 볼까 나는 두리번거리는데 병택이는 노련한 깨끼 장사답게 바로 "아이스깨끼나 하드!" 하고 냅다 소리를 지르니 버스정류장 쪽에서 "어이 깨끼!"하고 부르는 소리에 잽싸게 달려가 바로 몇 개인가를 판다.  

쭈볏거리는 나를 보고는 걱정 말고 따라오라며 손을 잡아끈다. 노량진역에서 중계소 방향으로 걷다가 철둑길로 넘어가는 루핑집 동네(지금의 수산시장) 간이 길이 나온다. 그 동네를 지나면 여의도와 한강의 지류인 샛강이 나온다. 여의도 비행장 시절이니 이 샛강 뚝방에는 능수버들 미루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어 깜깜한 밤에는 연인들의 밀회장소였다.

병택이가 시키는 대로 숲에 들어 작은 소리로 "아이스깨끼!" 하니 여기저기에서 "어이 깨끼!" 하고 부른다. 한 시간 남짓 시간에 한결같이 얼굴 벌게진 연인들에게 거의 다 팔았다. 생각해 보니 어렵던 그 시절 지금 같은 깨끗한 모텔도 노래방도 없었고 여인숙이 있었지만 가난한 연인들이 돈이 있었겠나, 그러니 자연이 준 한강 숲속 별빛 아래에서의 원시적 행위가 좋았을 것이고 흥분되고 땀에 젖은 상태에서 값싸지만 달콤한 아이스깨끼 한두 개로 여인을 달래주는 일, 이 어찌 거룩한(?) 일이 아니었겠는가, 아무튼 이 틈새시장을 꿰뚫고 있는 노련한 깨끼 장사 병택이 덕에 성공적인 첫 알바를 수행했고 몇 개 남은 깨끼는 내가 쭉쭉 빨아 남김없이 먹었다. 동시에 적어도 일주일은 만화 가게 갈 돈을 손에 쥐었다는 기쁨에 들뜨고 또 내일 장사 할 생각에 신바람이 났다.  

그렇지만 인생사가 어찌 마음먹은 대로 가겠는가, 하루도 못 가고 바로 다음날 아침 사달이 났다.  

엊저녁 깨끼통 메고 가는 나를 본 동네 강남네 아주머니가 아침 시장 두부 콩나물 사러 나온 어머니께 바로 고자질을 해서 아버지 귀에 직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에서 무릎 꿇은 자세로 꼬박 한 시간 넘어 아버지 훈시를 들어야 했다. 기억 나는 아버지 말씀의 요점은 노량진에서 그래도 행세 좀 하시는 당신의 아들이 깨끼통을 들고 다녔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많이 상하셨다는 거다.  

이즘 사람들은 아르바이트 알바 자리가 많으니 쉽게 얻고 최저 임금도 제도적으로 보호된다. 기업체 인턴 제도도 엄격히 말하면 알바다. 아무튼 기회가 많은 요즘 세상이 부럽긴 하다.  

한편으로는 엉뚱한 이런 상상도 해 본다.  

내 첫 알바 그때 그 샛강 그 숲에서 깨끼통 메고 팔았던 연인들이 그 깨기의 단맛으로 잉태된 아이가 태어났었다면 쉰이 넘은 장년이 되었을 것인데 깨끼의 정기를 받아 틀림없이 달콤한 삶을 살고 있을 거라는!  

생애 첫 아르바이트의 기억 역시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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