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영화 미나리

박산 2021. 4. 15. 10:52

「미나리」 기사 캡쳐

 

영화 미나리

 

1990년대 초 미국 출장 중 20일 넘게 머스키곤 뉴욕 디트로이트의 공장 방문에 심신이 지쳤을 무렵 시카고 사시는 막내 이모 댁에 가서 23일을 묵었다. 어린 시절 이모는 우리 집에서 학교를 다녔을 정도로 큰누나 같은 친밀감이 있는 사이였다. 이모부가 사업에 실패해 1970년대 초 아이 둘 데리고 미국 이민을 떠났었다. 나 역시 20여 년 만의 반가운 해후였다. 이모는 내게 여러 날 출장 여독이 클 터이니 미시건와 유서 깊은 시카고 시내 드라이브 관광을 하자 했으나 나는 이모 가족이 실제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어 운영하는 가게에 나가 일을 돕겠다고 자청했다.

 

시카고 슬럼가에 바(선술집)와 리꿔 스토아(창고형 술 판매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자가 건물이니 그만하면 성공한 이민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사촌 동생들도 치과의사이고 의과대학을 다니고 있었으니 자식 농사도 잘 지은 셈이었다. 키가 자그마한 이모부는 원래 과묵한 분이긴 하였지만 내가 뵈었을 때에는 더 말씀이 없으셨다. 10시경 이모는 먼저 귀가하고 이모부는 바에서 밤새 일하고 새벽 3~4시경에나 귀가해서 그날 번 매상이 담긴 돈 봉투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늦은 아침까지 주무셨다. 이모는 아침 일찍 일어나 돈 봉투를 확인하고 가게에서 쓸 물건을 직접 마트에 들러 구입하고 모자란 물건들은 전화로 주문하고 남은 현금을 입금하러 은행에 들렸다가 가게로 가는 게 반복된 일과다. 나는 담배 냄새와 술 냄새로 찌든 가게 바 청소를 도왔고 늦게 출근한 이모부를 도와 무거운 술병 박스를 옮겼다. 오후에는 바에서 정신 줄 놓아 보이는 알코올 중독자로 느껴지는 다수의 흑인 히스패닉 손님들을 관찰했다, 이들의 입에서 웅얼거리듯 주문하는, 난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를 이모부는 척척 잘 알아들었고 교포 여자 종업원도 잘 이해했다.

 

첫째 날 비좁은 술 창고 협소한 간이의자에 앉아, 한인 식당에서 시켜온 단출한 된장찌개를 점심으로 혼자 잡숫는 이모부의 초라한 작은 잔등이 너무 안쓰럽게 느껴져서 둘째 날 점심에는 "이모부, 내일 내가 떠나야 해서 오늘 점심은 제가 스테이크 대접할 테니 나가시지요!" 하니, 착 가라앉은 낮은 음성으로 하시는 말씀이 "여기 와서 쉴 사이 없이 바쁘게 일하며 불규칙적인 식사로 살다 보니 위장도 안 좋고 이상하게 점점 더 한국 음식만 찾게 되어 쌀밥에 된장찌개 김 멸치볶음 같은 것만 소화가 잘되네, 나는 괜찮으니 이모하고 나가서 맛나게 드시게나".

 

 

미국 이민자 삶을 그린 영화 「미나리」가 화제다. 미나리는 어떤 땅에서도 잘 자라는 풀이고 날것으로 데쳐도 무쳐도 먹을 수 있는 어디서건 생존의 상징성이 있다, 마치 이 영화의 이민자 가족처럼.

 

아리 감별사로 미국 땅을 밟은 한국 이민자 제이콥 가정의 삶을 그린 영화로, 젊은 시절 실제 미국 이민 11년 경험이 있는 75세의 윤여정 배우의 각종 수상 소식과 그녀의 쉬운 단어를 사용하는 영어 구사 능력 역시 기삿거리가 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속 한국 여성의 흔한 이름 '순자(윤여정)' 역시 시카고 내 이모 이름이다. 영화에 그려진 이민자들의 애환도 그렇지만 우리가 익히 다 알고 있는 한국식 디아스포라 정착기가 미국사회에 신선하게 다가서는 모양이다.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큰 감동이나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단지 한국인으로서 주위 흔한 미국 이민 가족들의 삶의 한 단면을 들여다본다는 의미로 관심이 컸다. 손자 데이빗에게는 화투를 가르쳐 주고 밤을 입으로 까서 입에 넣어 주는 할머니는, 오븐에 케익을 구워 주는 일반적 미국 할머니와는 많이 다른 존재다. 영화 평론가가 아니니 영화 「미나리」는 이 정도만 언급해 본다.

 

최근의 'Asian Go Back!' 의 인종차별주의에 특히 한국인들의 희생이 커지고 있다. 혹여 목소리 크고 겸손하지 못한 우리의 단점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하는 조심스런 짐작도 해본다.

 

나 역시, 위에 언급한 막내 이모 뿐 아니라 직계로 누나와 동생 처형 등이 미국 이민자인 가정이다. 물설고 땅 설고 사람 선 곳에서의 생존은 당연 어렵다.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막내 이모부 또한 얼마나 말 못 할 고생을 했겠는가, 밤새 피부색이 검고 험상궂게 생긴 덩치 큰 주정꾼들의 행패에 익숙하게 대처하며 히스패닉 종업원들의 게으름을 달래며 생존해 온 삶이 상상으로 그려지는 동시에, 불알 두 쪽 덜렁거리며 80년대 초 이민 갔던 내 사랑하는 평생 변치 않는 벗 LA 임바울 목사와 토론토 사는 캐나다 클레이 사격 대표선수를 지낸 김영철 역시 정착에 얼마나 고생을 했었을까 짐작하고도 남는다. 영화 「미나리」를 보면서 미국에서 생존 중인 내 주위 가족과 벗들에게 새삼 존경스런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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