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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한국 남자

「인공지능이 지은 시」 100쪽 못생긴 한국 남자 베를린 카이저 빌헬름 교회 앞에서 리시버를 통해 우리말 안내가 나오는 태극기가 그려진 시티투어 버스를 탔습니다 승객들로 꽉 찬 2층 버스에는 독일어 영어 불어 등의 각국의 언어들이 어설픈 이방인의 멍청한 귀로 질서없이 밀려들어 왔지요 바로 이때 뒤쪽 어디에선가 익숙한 나의 언어를 속삭이는 여인들의 말들이 다른 언어들을 다 내 쫓고 반갑게 귀에 쏙쏙 들어왔지만 그 말에, 그녀들의 그 말에 실망했지요 "여긴 버스 기사도 어쩜 저리 잘생겼냐!" 못생긴 한국 남자는 공연히 부아가 끓었습니다

2020.08.21

한결같은 이가 좋다

「인공지은이 지은 시」 44쪽 한결같은 이가 좋다 순간의 흥취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미소 가득 머문 얼굴로 다가오더니 차츰차츰 알아갈수록 사귀는 시간 무기 삼아 언제 그랬냐는 듯 매사 이리 재고 저리 재고 책임은 살살 피할 생각만 하고 제 주장만으로 핏대 세우다가 걸핏하면 혼자 삐치고 혼자 토라지고 궁지에 몰리면 어설픈 핑계로 얼버무리는 어제와 오늘이 너무 다른 이 난 오고 감이 한결같은 이가 좋다

2020.08.13

진흠모 228 & 229

이춘우 김영희 두 분이 운영하는 詩/歌/演은 열 번 소독으로 청결을 시도 했습니다. 바이러스 여파로 인사동 시낭송모꼬지 진흠모는 정상적으로 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라도 진흠모님들 얼굴 보아 즐거웠습니다. 감사패는 9월 구좌에서 생자 선생님께서 직접 전달할 예정입니다. 이렇게라도 아쉬움을 달래 봅니다 이렇게라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더 사랑하자 다짐했습니다. 뒤늦게 손에 쥔 인사島 무크지로 그나마 함께 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이 바리러스가 어여 물러 가 전국에 계신 진흠모님들이 생자 선생님과 함께할 날을 학수고대합니다. 추신: 도봉문화정보정보도서관에서는 8월 3일부터 31일까지 「망백 이생진 시인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시인의 50년대 시집과 그림 등의 소장품을 직접 보시..

2020.08.10

바람 소리

시집 「인공지능이 지은 시」 20쪽 바람 소리 새벽 6시 어둠 속 가미호로소 야외 온천탕 제 몸 몇 배의 눈덩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소나무들이 부러진 가지들조차 쉬이 놓아주지 못하고 바람을 부르고 있다 산악스키 전문가라는 가슴 털이 복슬복슬한 스웨덴 청년과 뽀얀 김 서린 욕탕에 어깨까지 푹 담근 채로 그가 경험하고 있는 일본 얘기를 듣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하고 물어와 이렇고 저렇고 몇 마디 대꾸하는데 바람이 던진 커다란 눈덩이 하나가 소나무 꼭대기로부터 날아와 김 서린 온천탕 우리 머리 위를 퍽! 하고 덮쳤다 머리 위 눈을 툭툭 털어내던 청년은 솟구치는 새벽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겠는지 덜렁거리며 벌떡 일어나더니 스트레칭으로 물장구치며 “Today will be good job! fine..." 신바람..

2020.08.07

SAMSUNG

시집 「인공지능이 지은 시」 28쪽 SAMSUNG 비엔나에서 헬싱키 가는 아침 비행기 옆자리 서류 가방에 넥타이 차림 청년과 미소로 눈인사를 나눴습니다 30년 세일즈맨 생활을 했던 저는 한눈에 척 세일즈맨임을 짐작했습니다 부산하게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켜더니 스마트폰에 있는 자료를 노트북에 자판을 두드려 입력 중입니다 얼핏 노트북 화면에 보이는 게 'Account Holder Account' 거래처 매출장입니다 노트북을 닫아 가방에 넣더니 이번에는 얇은 태블릿PC를 꺼내 또 무언가의 문서 작업을 계속합니다 Quotation, Price…. 저와도 친숙했던 단어들이 보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세일즈맨을 보는 일도 세일즈맨 출신으로서 즐거운 일이었지만 이 친구가 사용하는 모든 기기가 SAMSUNG 제품이라는 게 ..

2020.08.04

닷새 동안 뭐 별것도…

닷새 동안 뭐 별것도… 쓰고 찾고 저장하고 듣고 보고 소통하고도 쥐고 있어야 안심 그것도 모자라 머리맡에 두고 잠들기 신줏단지 모시듯 상전도 이런 상전이 없다 내가 주인이어야 마땅한데… 버리자! 이눔을 버리자! it's 100% impossible! 그럼 이틀만… 아니 하루만이라도 지하철에서 앉고 서 있는 젊은 다수는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에 머리 박고는 구린 입도 안 떼고 문자를 두드리는데 검고 붉고 푸른 옷차림의 내 또래 60대 남녀들은 주위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통화 중이다 공연히 내 얼굴이 붉어진다 독한 맘먹고 닷새를 버렸다 헤어졌다 만난 애인 입술 열 듯 다시 켰다 도심이 싫다고 지리산 자락 사는 W가 짜증스런 문자를 남겼다 -아니 왜 전화를 안 받아?- 도사 되긴 힘든 친구다 자주 소통하..

2020.07.29

인공지능이 지은 시(서문/가식)

적막(이광무) 박산 시집: 인공지능이 지은 시(황금알) 짬뽕집에 갔는데 국물이 하얗다 이게 무슨 짬뽕? 그렇지만 맛있다 詩에는 꼭 아름다운 언어만을 써야 하나 시와 산문이 구분되어야 하나 산다는 게 짬뽕처럼 뻘겋게도 맛을 내지만 허여멀게도 맛을 낼 수 있지 않을까 IT와 AI가 끊임없이 변신할 것을 강요하는 번잡한 세상에서 쉰 넘어서부터 십여 년 넘게 시를 써 보니 시가 그렇다 시를 써 놓고 보니 뭔가 있는 척 했다 잘못했다! 시에게 사과하고는 얼른 다 지웠다 (12쪽)

2020.07.27

그 양반 나였으면 -

그 양반 나였으면 - 오늘 참 괜찮은 양반 만났어요 넉넉한 풍채 소탈해 보이는 입성 벌컥벌컥 막걸리를 어찌나 맛나게 마시는지 덩달아 나도 벌컥벌컥 마셨지요 술술 뱉어내는 한 마디 한 마디 누구나 살아왔던 그렇고 그런 얘기들이지만 어찌나 진솔하게 풀어 놓는지 뭐 입담이 뛰어나기보다는 좌중을 편하게 해주는 재주가 있었어요 알고 보니 이 양반 시를 쓴다네요 고향이자 여전히 진화 중인 도심에서 서성거리며 과거 현재가 비벼진 뒷골목 혼잡한 냄새들을 붓 터치 거친 꾸밈없는 수채화처럼 붉은 건 붉게 파란 건 파랗게 검은 건 검게 그냥 그렇게 쓰고 있다네요 독자를 의식하고 문학을 거창하게 들이밀어 유명해지고 싶은 그런 맘은 애당초 없었다네요 불콰해진 얼굴로 웃으며 말하길 고백하지만 세상사 온통 화나는 일이 수두룩하지만..

2020.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