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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박산 2020. 5. 18. 11:17


樹下夢(김명옥 화가)



들꽃-  


 목적을 상실한 인간 하나 
 광야로 나와 길을 잃었다 

 이름 모를 손톱만한 보랏빛 들꽃 한 송이에 
 취한 듯 코 박아 수작을 걸었다 

 어디서 본 듯하다 
 우리 언제 만난 적 있었지 
 
 보아주는 이 없던 들꽃 
 이 느끼한 음성에도 
 이 때다 지겨운 고독을 팔려한다 

 그 거래가 성사 될 즈음 
 얼굴 못난 소슬 바람은 
 결국 사랑을 싣고 왔다 

 신바람 난 꽃은 흔들거려 노래하고 
 고개 박은 인간은 그제야 옅은 미소를 흘린다 

 찰나의 기쁨은 생의 목적을 다시 잉태했다 
 꽃은 더 아름답고 인간은 광야에서 허릴 폈다 


( 박산 시집 '노량진 극장'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