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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한 여섯 살 먹었을까  노란 날개 달린 발레복 입은  예쁜 여자아이가  빨간 브라우스 입은 예쁜 엄마와  룰룰랄라 버스에 올라서는  내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아이가 쫑알거리는 말이  “난 할머니가 너무 좋아  할머니 오시라고 전화해야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엄마가 하는 말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 시집 《가엾은 영감태기(2024,예서)》 중   * 시니어들의 애환을 노래한 시집 『가엾은 영감태기』가 MZ세대 포함 3, 40대의 공감을 얻어 기쁜 마음이 큽니다.

2024.09.15

알고리즘 우롱하기

알고리즘 우롱하기 ㅡ지하철 버스로 종로 뒷골목 대폿집이나 다니다가  잠실 L 호텔에서 스테이크를 썰었다  영등포시장 순댓국밥집에서 룰룰랄라 막걸리를 마시다가 서교동 등심 한우집을 가서 27만 원을 긁었다 동대문시장에서 감색 3만 원짜리 페도라 모자를 샀는데L 백화점에서 68만 원 주고 명품 지갑을 샀다    수준 파악이 헷갈린 알고리즘이 자꾸 묻는다  그 호텔 어떠냐고 그 식당 어떠냐고 그 백화점 어떠냐고   절대 대답을 안 했다   너도 궁금한 게 있어야지 다 알려 하면 다친다!

2024.09.10

영허(盈虛)

=영허(盈虛)   1. 위안(慰安)  아파하지 마시게  그럴수록 더 아프다데  슬퍼하지 마시게  그럴수록 더 슬프다네  아프다고 마냥 울다간 눈이 빠질 것이고  슬프다고 넋 놓다간 혼(魂)이 빠질 것이네  달도 차다가 기울고  태양도 비추다 사라지듯이  잿물 삭여 잿빛 우려내듯  조금만 기다리고 조금만 참아야지  어차피 흐르는 건  모났다가 죽어가는 것이  인생살이 아니런가    2. 동감(同感)    알고 있네, 나도 알고 있다네  살다 보니 맥없이 엎어져  몇 바퀴 돌아 뒹굴다 깨지고  흐르는 핏물도 맹물인가 하였고  혼 빼고 앉았다가  잠시간의 제정신에  와락 울고 싶어지는데  말라 나오지도 않는 눈물 콧물을  배출도 못하는 서러움은  왜 이리 야속도 한지  시간은 ‘세월’이라는 풍류로 포장되어 잘..

2024.09.05

엇박자도 박자다 (부제: 김중열)

엇박자도 박자다(부제: 김중열) ㅡ  이제는 전국적으로 제법 소문난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건배사  됐어!, 됐어, 바다가 보이면 됐어!, 됐어!(합창) 됐어!, 됐어, 바다가 보이면 됐어!, 됐어!(합창)  「인사島」 모꼬지에서 힘차게 외치는데 직선을 싫어하는 김중열 시인은 간혹 간혹 사이사이 엇박자를 놓는다 에이! 여기저기 막걸리 투정 소리 들리지만 그래서 『진흠모』는 더 합심으로 외친다 더 나은 외침을 위한 엇박자 장단이 48년생 그를 귀엽게 만드는 순간이다  시 씀에 더하여 ‘톨카소’라 외치며 그림까지 그리는 엇박자 인생에 진정 축복 있으시길! 엇박자도 박자다

2024.09.03

영감태기 가을맞이

영감태기 가을맞이 ㅡ 봄볕에는처녀 가슴 부풀고가을볕에는과부 바람난다는데 한가한 영감태기는가을 숲에 앉아밤나무 우듬지 사이구름 구경 중이다 소나무에 바짝 붙은 늦매미는죽어라 짧은 명줄에 울어대고수선스럽기만 한 수컷 까치는거칠게 사랑 구걸 중인데 세상 놀랄 일 없어진도사가 된 줄도 모르고막 기지개 켠 소슬바람이자꾸 코를 간질인다   添: 아침 사랑하는 S가 보내준 시를 읽다가평소 시를 참 잘 쓰는 시인이란 잠재의식으로칭찬 감상을 적어 보냈더니릴케의 '가을날' 이였습니다.아 맞아! 도입부가 익숙했고전개 또한 가까운 벗의 음성 같았지요.이유는 번역자 각각의 다름 감성입니다. ㅡ 주여 지난 여름은 위대했습니다 ㅡ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ㅡ 주여, 가을이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

2024.08.30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74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74‘】 8월 30일 6시 30분 마지막 금요일 종로구인사동길52번지 인사14길詩/歌/演(02)7206264쥔장:김영희 01028203090/ 이춘우010777315791호선종각역→안국동방향700m3호선안국역→종로방향400m 274 낭송 예정자: 김미희 지현, 김효수, 김문자, 류재호, 김중열, 조철암, 이원옥, 김경영, 박산, 이생진.     생자의 친구 김효수 ㅡ 박산   툭툭 건네는 말이 껍질 덜 벗겨 낸 밤송이같이 거칠지만한결같은 생자와의 우정은두리안 속살같이 하얗게 꼭꼭 잘 씹힌다춥고 바람 부는 날에도장마에 습진 날에도도봉동 나들이 단짝이고인사島 어묵 먹기 짝꿍이다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73‘ 스케치】(7월 26일 6시 30분 마지막 금요일)..

2024.08.24

이런 이가 좋다

이런 이가 좋다 -  처음엔 좋다 싫다 없던 사람이 조근조근 말 몇 번 섞어보니 하얀 이 훤히 드러나게 잘 웃는 이  잊을 만하면 문자로 오늘 술 한잔 어떠신지?품에 안기듯 슬쩍 정으로 군불 지피는 이  첫인상이 우락부락 울퉁불퉁하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잘 비벼진 짜장면 면발처럼미끌미끌 맛있게 *섯버믈리는 이  입성이 별로여서 술값 낼 것 같지 않더니지갑 속 꽉 찬 부富를 시집 펼치듯이 천천히 자주 여는 이 만난 지 두 해가 넘도록 어느 학교 다녔는지 어디 사는지 입 뻥긋도 묻질 않아 성질 급한 내가 먼저 다 말해주는 이 말러의 교향곡을 좋아한다더니막걸리 한 사발에벌건 깍두기와 머릿고기 우적거리며 손장단 제 흥에 겨워 육자배기 한 가락 흥얼거리는 이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꾸준한 인간성으로 십 년 후에도..

2024.08.20

'가엾은 영감태기' 함께 감상하기

=박산 시집 《가엾은 영감태기》 함께 감상하기                                                   - 영담 박호남(문학박사, 한국공연예술원 원장) -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인사도(仁寺島)」 모꼬지를 주도하시는 박산 시인의 시집을 받고, 아직 문인으로 이름을 내지 못한 내가 어떻게 시를 읽고 글을 써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시집을 읽으며 시인과 친근감과 공통점을 많이 발견하게 되었다.   먼저 시인이 성장하고 자란 지역이 ‘노량진’이라 어린 시절 그 지역에 대한 묘사가 아주 실감나게 다가왔다. 나도 대방동에 있는 ‘강남중학교’를 다녔기에 노량진 철교와 여의도 비행장은 비교적 자주 가던 곳이다.   둘째, 사업을 하다 실패를 한 쓰라린 경험과 이..

2024.08.17

노들나루 1960’s

=노들나루 1960’s -   아이야한강 철교 아래 은빛 모래밭철길 넘으려는 기적소리 들리는거기로 가자 아이야빨간 난닝구 유신이가 모래성을 쌓고고물상집 국영이가 대나무 낚시 놓는거기로 가자 아이야샛강엔 능수버들 화들짝 푸르르고여의도 비행장 비행기 구름 향해 오르던거기로 가자 아이야양화진 강바람에 밀려온 고깃배가마포나루 서강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거기로 가자 아이야삼각빤스 바람에 헤엄치다가들어와라! 목청껏 날 부르는 형이 있는거기로 가자 아이야‘높은절이’에 아지랑이 모락거리면숭어떼 펄쩍펄쩍 뛰어오르는 샛강거기로 가자 아이야수염이 긴 할아버지 두루마기 소매에서사육신묘지 제사떡이 불쑥불쑥 나오던거기로 가자 아이야미군 MP와 사는 누나 둔 호태와 놀다씨레이션 깡통을 깠다가 고기 횡재를 했던거기로 가자 아이야국군..

2024.08.11

쫀순이와 쫀돌이

쫀순이와 쫀돌이 -   55년 乙未 生 올 칠순 맞은 혜인 여사   화곡동 24평 아파트에 혼자 산다 아들은 마포 살고 딸은 미국 산다   잔치까지는 기대 안 했지만 그래도 칠순인데... 뭔가 있겠지!    마흔 넘은 아들은 25000원짜리 한정식으로 때웠고 딸년은 오메가3 영양제로 때웠다   은근히 부아가 나지만, 어쩌겠나?   잘 걷고 잘 먹어 자주 만나는 숙자 氏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더니 대뜸 하는 말이 뭘 더 바라냐? 내 새끼들도 어찌나 쫀돌이 쫀순이들인지….   거품 문 숙자 氏 덧붙이기를 야 너도 맘 편히 살아! 월세 나오는 거 다 쓰고 살아! 모을 거 없어 누구 주자고?   숙자 氏는 임영웅 팬카페 영웅시대 멤버다 함께 다니자!   일단 둘이서 ktx 타고 부산 럭셔리 호텔 3박을 예약하기로 ..

2024.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