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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分

名分ㅡ 5ㆍ16나고 몇 해 지난 한강다리 노들나루 동네 서낭당 고개 넘어 작은 골짜기 얼기설기 골목에는 기와집도 루핑집도 아니게 지어진 허술한 집들이 몰려 있었는데, 대문도 없는 집 문간방에 상투 틀고 망건에 명심보감 들고 수염 쓰다듬으며 긴 곰방대 두드리며 사는 아저씨가 있었다. 눈 오시는 날임에도 뒷짐 지고 팔자걸음으로 골목 내려가다 자빠져서, 시장바닥에서 채소 장사하는 마나님 단칸방 3년 수발 받다 돌아가셨다, 동네 어른들 수군거리길 "양반은 무슨 얼어 죽을 양반이야, 이 대명천지 깬 세상에! 가난에 찌든 새끼들하고 마누라만 죽을 고생이지! 명분은 무슨 개뿔!" 하였다. 호텔 같이 화려하고 큰 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으로 상청에 국화꽃 한 송이 올리는데, 고인이 앞을 보게 거꾸로 놓아야 한다고 어깨 ..

2024.04.03

종각역 3번 출구

종각역 3번 출구 - 술 생각도 나고 벗 얼굴 한 번 볼까 그저께 넣은 문자 대꾸 없어 그대로 씹어 삼켰나 했는데 오늘에서야 발견하곤 어디서 만날까 나름 진지하게 날아온 답변에 기차 떠난 지 언젠데… 핀잔주려다 해설피 늙어가며 어설퍼지는 게 어디 너뿐이랴 생각하니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 가슴에 들었다 시치미 뚝 떼고 문자 보내길 쌩큐유! 6시 종각역 3번 출구! * 해설피: 해가 질 때 빛이 약해진 모양을 뜻하는 말로 시에서는 느리고 구슬프다 * 상황 詩(Situation Poem) : 순간적 느낌으로 쓴 시를 실시간 카카오톡이나 문자 등의 SNS로 보내면 상대방은, 받아 읽는 그 상황에 따른 느낌을 답변하여 소통하는 시. * 시집 《'무야의 푸른 샛별' (2015) 중》

2024.03.30

2024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69'

【2024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69'】 * 1시간 당겨 6시 시작합니다. 2024년 3월 29일 6시(매달 마지막 금요일) 종로구인사동길52번지 인사14길 詩/歌/演(02)7206264 쥔장:김영희 01028203090/ 이춘우01077731579 1호선종각역→안국동방향700m 3호선안국역→종로방향400m 종로매 : 양숙 볕바르고 평안한 곳에서 고결하다고 추앙 받으며 우아한 별명까지 받은 친구들 선암매, 고불매, 납월매, 화엄매 정말이지 무척 부러웠다 귀청 찢을 듯한 소음과 십 년 묵어 찌든 매연 거적때기 뒤집어쓰고 밤중에도 대낮같은 조명에 눈 감지 못하고 시달리지만 목숨줄 끊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염화칼슘으로 인한 갈증과 강추위에 가물거리는 의식 흔들어 깨워주는 매년 잊지 않고 들..

2024.03.23

무위 3

무위 3 - 곧장 앞으로만 가라고 배워 살았는데 살다 보면 그게 어찌 그리 쉬운 일이던가 휘고 꺾이어 부러지기 일보 전에야 겨우 목숨 건진 게 몇 번이었나 하늘 계신 울 아부지도 그랬겠지 깔린 양탄자 밟고 사는 인생 몇 되나 목구멍 꿀꺽꿀꺽 타고 넘는 막걸리같이 들어가 타고 흐르고 내려가다 보면 오줌 되고 똥 되고 뭐…다 그러는 거지 이쪽 길도 저쪽 길도 살피다가 오던 길 뒤도 한 번 돌아보고 힘닿으면 닿는 길을 가야지 비가 오시려나 눈이 오시려나 어여 오시길! * 시집 《 '인공지능이 지은 시'》 중

2024.03.19

간월암 봄 서정

看月岩 봄 敍情 ㅡ 孟春 서산 아주 작은 섬 차고 세찬 바닷바람 圓通殿 감싸 도니 사철나무 팽나무도 부르르 떱니다 그럼에도 저만치 갯벌에서는 조개 캐는 부지런한 소란스럼으로 봄 마중 풍경화를 그리는 중입니다 방파제 길 정박 중인 고깃배 옆에는 그물 작살 등이 무질서로 쌓였지만 붉은 등대는 무심코 바다만 봅니다 다섯 번 왔는데 정작 달 구경은 못했습니다 이 동네 맛있다! 널리 소문난 굴밥은 까탈스런 봄 입맛이 외면하네요 看月岩春天的愛 ㅡ 孟春瑞山很小的島 海風寒冷而強勁風圍繞圓通殿 就連常綠樹和朴樹也在發芽 儘管如此, 在那片泥灘上 辛勤地挖蛤蜊 正在畫一幅迎接春天的風景 停泊在防波堤道路上的漁船旁邊 雖然網子、魚叉等雜亂地堆放著, 紅色燈塔只看海不思考 來過五次 實際上 看不見月亮 這個街區 很好! 著名的蠔飯是 春天的挑剔品味忽略了..

2024.03.15

해빙기

해빙기 - 검고 붉게 성긴 딱지가 완전히 아물지 않아 피 흘리던 통증의 기억 여전히 어제의 일이지만 새살이 차가운 얼음에서 살아있었다는 사실이 고맙다 찢어지고 터졌던 원인을 지금 다시 분석한다는 건 대차대조표의 차변과 대변 같은 비즈니스적인 것 구름 일고 바람 불고 눈비 내리시는 일에 겨우 티끌 하나 죽도록 미워하고 울다가도 다시 다가온 사랑 한 방울 꽁꽁 얼었던 빙하의 바다 향한 눈물 같은 거 녹아 툭툭 떨어지는 처마 끝의 고드름 같은 거 그럼 됐다 * 시집 「인공지능이 지은 시 」 중

2024.02.29

서울특별시 부천구 사람들

서울특별시 부천구 사람들 - 환갑 지난 우리 회사 윤 사장은 대대로 부천 살아 온 토박이다 행정구역만 경기도에 속했지 구로구 강서구에 들쑥날쑥 붙은 인구 80만 서울특별시 부천구나 진배없다 토박이는 아니지만 나도 부천 시민이다 토박이들은 아직도 동네 체육대회를 꼬박꼬박 열고 끼리끼리 뭉쳐 여행 다니면서 선배 어른 공경하는 모습들을 보면 풍금 소리 들리는 시골 읍내 학교 앞 풍경을 보는 듯하다 그중 가장 부러운 건 우리 윤 사장 벗들이다 그중 나도 의형제로 절친이 된 긍X 그리고 승x다 주말이면 함께 텃밭을 가꾸고 자전거를 타고, 뒷동산을 오르고 방금 집에서 저녁 먹었어도 뭉치고 일하다가도 수시로 소통하며 만난다 잘 사는 긍X도, 어렵게 구멍가게 꾸려 나가는 승X도 윤 사장도 한결같이 흰 머리카락에 배 불..

2024.02.24

인사동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68'

【인사동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68'】 * 1시간 당겨 6시 시작합니다. 2024년 2월 23일 6시(매달 마지막 금요일) 종로구인사동길52번지 인사14길 詩/歌/演(02)7206264 쥔장:김영희 01028203090/ 이춘우01077731579 1호선종각역→안국동방향700m 3호선안국역→종로방향400m 268 낭송 예정자: 김지현(미희) 김효수 류재호 김중열 윤효순 조철암 이원옥 한옥례 김화연 김경영 박산 이생진 「신에게 기도드려요」 : 김효수 새해의 첫 밤 잠자리에 앞서 손을 모으고 간절하게 기도드려요 세계 곳곳 일어나지 말아야 할 전쟁이 아주 처참하게 벌어지고 멀쩡한 땅 쩍쩍 갈라진 지진에 높은 산봉우리 힘없이 무너지는 위험한 이 세상에 아무 일 없이 이제껏 지켜주셔서 감사드려요 지나간 해보다 ..

2024.02.17

노량진 극장

노량진 극장 1 - 1963년 허구한 날 빨간 줄무늬 난닝구셔츠만 입고 다녀서 내 친구 유신이는 별명이 '빨간 난닝구'이고 머리통이 약간 기울어진 경구는 그냥 '짱구'라고 불렀다 화창한 어느 날 노량진역 앞에 극장이 지어졌다 양철 슬래브가 기왓장 보다 더 미끈하게 한옥 지붕 선을 본떠 올렸는데 그 선이 볼수록 크고 멋 있었다 개업 축하 만국기가 빨래줄 같은 긴 줄에 걸려 나풀거리는데 아는 국기라고는 태극기 성조기 일장기 뿐 이었다 샛강 하나 사이에 둔 여의도 비행장에서는 수시로 비행기가 뜨는데 빨간 난닝구는 '노량진 극장 개관 축하 비행' 때문이라고 바락바락 우겨 그럼 내중 뜨던 비행기는 무엇을 경축하려고 떴느냐 핏대 높여 싸웠다 울긋불긋 그려 붙여놓은 극장 간판에는 한문으로 '成春香'이라고 쓰여 있지만..

2024.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