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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밝이

갓밝이- 마당 자동차 시동 걸리는 소리가 달의 사라짐을 재촉했다 어둠을 몰아내고 있는 하늘 구름 기지개가 촉촉했다 화단 이슬 잔뜩 머금은 잎새 하나 파르르 떠는 모습 흐릿하게 보였다 고양이가 내는 음전한 소리에 새들은 긴장했다 바쁠 게 없는 게으른 먼동 아파트 꼭대기 유리창에 붙었다 부지런한 자 나지막이 부르는 희망의 노래 소리 저만치 들렸다 * 갓밝이: 새벽 태양이 떠오르는 시점 시집 ≪구박받는 삼식이 (2011)》 중

2023.12.31

인사동시낭송 2023 송년 모꼬지 진흠모'266'

【인사동시낭송 2023 송년 모꼬지 진흠모 '266'】 * 1시간 당겨 6시 시작합니다. 2023년 12월 29일 6시(매달 마지막 금요일) 종로구인사동길52번지 인사14길 詩/歌/演(02)7206264 쥔장:김영희 01028203090/이춘우 01077731579 1호선종각역→안국동방향700m 3호선안국역→종로방향400m * Dress Code: 정장(Suit) * 창경궁 주목 새천년 : 양숙/265 발표 詩) 세상에나 이럴 수가! 봄에도 멀쩡하시더니 소복 준비도 못하고 왔는데 가시다니 가셨다니 주검을 목도한 구경꾼들 문상은 생각조차도 안 하고 왜 죽었지? 이렇게 오래 살았었어? 못 버티고 죽었고만 경건하게 머리 조아리며 마음속으로 조사를 올린다 ‘격동의 세월 묵묵히 버텨내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20..

2023.12.23

부러운 놈

부러운 놈 - 잘잘 끓는 아랫목에 누워 마누라 엉덩이 통통 두드리다 조물조물 허리라도 안을라치면 실쭉 눈 흘겨 이부자리 밖으로 톡 튕겨 빠져나가며 “아침밥 지어야지” 그 한 마디가 남긴 작은 공간의 갑작스런 썰렁함이지만 가진 것 많지 않은 꽃자리 좁은 남편에겐 가슴 그득 큰 행복이다 별 볼일 없는 쥐꼬리 월급쟁이 하릴없는 소시민 아비를 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한다는 지지리 공부 못하고 얼굴까지 못생긴 아들놈이지만 어깨가 부스러지도록 안아주고 싶고 곧 늙어 힘 빠질 우리 아부지 제일 좋아하는 술 안 받아주는 놈하고는 절대 결혼 안 하겠다는 딸년은 가슴 속에 넣고 다니는 또 다른 큰 행복이다 잘사는 놈이 십박 며칠 유럽여행 가자 해도 내 꼬락서닐 알아야지 하고 참고 그냥저냥 만만하게 사는 놈이 모처럼 공 치자..

2023.12.19

장수막걸리

장수막걸리ㅡ 널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인다! 꼭지를 잡고 살살 뒤집어 흔들다 꽉 쥐었다 폭폭 살살 주무르고는 살째기 꼬시면서 뚜껑을 열면 익숙한 내음이 코로 안길 즈음 콸콸 한 사발 찰랑찰랑 채워 공손히 입술에 대고 고수레! 경배하고는 벌컥벌컥 목구멍 타고 넘는 순간부터 아득히 먼 피안의 세계를 찰나로 통과해서 감았던 눈을 뜨고 돌아온 현실에는 나이아가라 폭포가 입에 가득 들었다 콜라도 주스도 사이다도 아니고 이건 단맛도 쓴맛도 아니다 잔이 비우면 채워지고 그냥 슴슴해도 목 넘김이 찰지다 녹두 빈대떡에 동그랑땡도 좋지만 구운 소시지에 김치도 찰떡궁합이다 또 비우면 채워지고 또 비우면 채우고 카! 으음! 아! 이건 섹스요 오르가슴이다! 長~壽? 솔직히 그것까진 장담 못 하겠다!

2023.12.16

개소리 박박

조지 버너드 쇼 또는 버너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 1950년)로 불려지는 이 아일래드 극작가의 묘비명에는 이리 쓰여져 있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인터넷 떠도는 번역은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인데, 얼핏 읽으면 인생 후회하는 듯 보이지만 내 번역은 "늘그막에는 제발 하고싶은 거 하면서 살아라!"는 의미로 읽힌다. (사진 페이스북 발췌) 개소리 박박 - 빌어먹을 세상 결국 나를 버린다고 소주병 양손 틀어쥐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병나발 흔들어 마셔가며 씨발씨발 외쳐 본적이 있는지요 돈 못 벌어들인 제 잘못에 겨워 고분거리는 처자식이 떨어지지 않은 찰거머리..

2023.12.11

Say, Goodbye!

Say, Goodbye! ㅡ 두 달 연속해서 다정도 병인 양하는 토론토 살고 LA 사는 평생지기 두 벗이 계절 바뀌듯이 다녀갔다 그들이나 나나 어디 가서 돈 자랑 할 거 없고 큰소리칠 일 하나 없이 성공을 비켜 가는 지극히 겸손한 삶을 살았는데 지난달에는 대방동에서 이번 달에는 부천역에서 안 하던 진한 허그까지 하면서 Say, Goodbye! 가는 뒷모습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 옅은 한숨 섞인 설움에 겨운 이별 청춘의 남녀상열지사도 아닌데 헤어지기가 너무 힘이 든다 잘 도착했냐? 동영상 통화를 하다가도 눈가가 촉촉해져서 얼른 끊었다 나이 탓인가

2023.12.08

이런 이가 좋다

이런 이가 좋다 - 처음엔 좋다 싫다 없던 사람이 조근조근 말 몇 번 섞어보니 하얀 이 훤히 드러나게 잘 웃는 이 잊을 만하면 문자로 오늘 술 한잔 어떠신지? 품에 안기듯 슬쩍 정으로 군불 지피는 이 첫인상이 우락부락 울퉁불퉁하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잘 비벼진 짜장면 면발처럼 미끌미끌 맛있게 *섯버믈리는 이 입성이 별로여서 술값 낼 것 같지 않더니 지갑 속 꽉 찬 부富를 시집 펼치듯이 천천히 자주 여는 이 만난 지 두 해가 넘도록 어느 학교 다녔는지 어디 사는지 입 뻥긋도 묻질 않아 성질 급한 내가 먼저 다 말해주는 이 말러의 교향곡을 좋아한다더니 막걸리 한 사발에 벌건 깍두기와 머릿고기 우적거리며 손장단 제 흥에 겨워 육자배기 한 가락 흥얼거리는 이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꾸준한 인간성으로 십 년 후에도..

2023.12.03

푸항또우장(阜亢豆奬) 줄 서서 먹기

푸항또우장(阜亢豆奬) 줄 서서 먹기 ㅡ 나는 좀처럼 줄 서는 식당을 안 간다. 궁금한 걸 못 참는 아내와 타이베이 여행 중에 미슐랭 빕 구르망 '푸항또우장' 맛집이 있으니 아침 먹으러 가잔다. 아니 왜? 호텔 아침 식사비 다 포함됐는데 거길 왜 가느냐? 싫다고 하자니 모처럼 나온 여행에 쫀쫀한 영감태기 때문에 할망구 기분 상할까, 속으로만 '아니 중국인들이 우리네 아침밥처럼 먹는 콩국 그깟 또우장이 맛이 있어 봐야 또우장이지' 하면서도 따라나섰다. 시먼딩(西門町) 숙소에서 시내버스 타고 내린 셴따오쓰(善道寺) 정류장 또우장 식당 있는 건물에 도착한 시간이 9시 정도였는데, 아뿔싸! 기다리는 줄이 어림잡아도 150m다. 뭐지 이게? 콩국물 하나 먹겠다고 이렇게 오래 줄을 서서 기다려 먹는다는 말인가. 한 ..

나의 이야기 2023.11.24

인사동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65'

【인사동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65'】 * 1시간 당겨 6시 시작합니다. 2023년 11월 24일 6시 (매달 마지막 금요일) 종로구인사동길52번지 인사14길 詩/歌/演(02)7206264 쥔장: 김영희01028203090/이춘우01077731579 1호선종각역→안국동방향700m 3호선안국역→종로방향400m * 폐자전거 앞에서 : 김태경 (264 모꼬지 발표 시) ​ 시는 정말 우연하게 오는 걸까 할 일 없는 이른 아침 빗방울은 존 레논의 노래처럼 내리고 있다 나는 카페에 앉아 낡은 폐자전거를 바라본다 얼마나 달리다가 멈췄을까 꿈을 싣고 다닌 의자는 어디로 가고 삶의 주인공은 어디로 떠났을까 이가 빠진 듯한 바큇살은 나팔꽃에 휘감겨 나른한 표정이다​ 외로운 풍경이 아름답다고 낡음으로 삭아 이제는 더 달..

2023.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