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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선진국 ㅡ 30여 년 전 일본 도쿄 출장 시 긴자 근방 호텔에서 오전 미팅 장소인 M 종합상사를 찾아가다가 출근 시간 복잡한 빌딩 숲에서 길을 잃어 길 가는 20대 여성에게 담당자 명함에 적힌 주소를 보여주며 길을 물었는데 영어 소통이 안 됐었는지 내 소매를 살짝 잡아끌면서 몇 블록을 지나 M 종합상사 건물 출입구까지 데려다주고는 당연히 할 일을 했다는 표정으로 오던 길로 돌아갔다 혼토니 아리가또 고자이마시다(本当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그로부터 강산이 세 번 바뀌었다 비 맞고 눈 맞으며 햇볕에 마르길 반복하여 궂은일 모두 지켜보았던 내 정수리 머리칼들이 시나브로 사라진 바람 센 늦가을 어느 날 덥지도 춥지도 않을 이맘때 섬나라 대만이 떠올라 타이베이로 떠났다 타이베이역에서 시내버스로 시립미술관 정류장..

2023.11.18

Chip War

Chip War ㅡ 햄버거에 더해 먹는 감자 칩과 음식 맛없기로 소문난 영국의 Fish and Chip만 있는 줄 알았는데 먹는 칩 말고 세계는 지금 반도체 칩 전쟁(Chip War) 중이다 삼성은 메모리 칩 1위이고 대만의 TSMC는 비메모리 칩 펩리스 1위다 부자 나라들이 반도체 칩 설계에 집중하는 동안 그 설계 받아 칩을 만들고 있는 한국 대만 경제가 커졌다 냅두다가도 너무 크면 그 꼴을 못 보는 부자 나라들이 이 핑계로 저 핑계로 Tighten, Constrict, Squeeze,,, 이런 단어들 은근 깔아 옥죄기 시작했다 칩 선진국이었다가 지금은 쳐진 일본은 '권토중래' 잃었던 칩 땅을 찾으려 나라가 나서서 집중 중이다 어쩌겠나, 감자 칩이야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 이건 국가 생존의 문제이니 미꾸..

2023.11.07

불쌍한 영감태기들

불쌍한 영감태기들ㅡ 어디 좀 함께 가려면 마누라 허락부터 구해야 한다니 일흔 나이에 사나이 대장부 호기 앞세울 일은 아니라 가만 사정 들어 이해하려 했지만 스스로 치마폭에 기어들어 자가 주술에 걸린 상태다 근육 성성할 날 얼마 남지 않았는데 뜻밖에 ‘外泊證’ 이게 해결 안 되니 나 혼자 잘난 척 강요하다가는 자칫 독재자 소리 들을까 그냥 혼자 훌쩍 떠났다 돌아와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만나 좋게 그냥 좋게 웃고 산다 서로 밥 먹여 주어야 하는 경제적 카르텔도 전무하니 피차 아쉬운 사이는 아닐 터 근데… 낮술 마시면서 어디 가자! 실없는 소리는 제발 그만 하길!

2023.11.03

무위無爲 Ⅰ

무위無爲 Ⅰ - 상자 안 등불 하나 켜 놓고 하나둘 셋 주어진 숫자로 하루 세 번 저린 발을 뻗고 딱 세 끼를 챙겨 먹으며 누군가의 이론을 신앙으로 품고 살다 갑자기 찾아온 태풍 같은 무지막지한 그런 것들에 부서진 상자 밖으로 튕겨 나왔다 어둠에 물체들이 손에 잡혔지만 처음엔 온통 두려움뿐이었고 빛을 찾는 이유가 막연했다 굳이 말하자면 무엇엔가의 의존이었다 시간이 물어다 준 여유가 무력한 한숨을 꾸짖기 시작했다 손과 발을 자꾸 움직였고 배가 고플 때마다 먹었다 이전에 경험 못 했던 이를테면 원초적 생명 같은 것들이 심장을 평안케 움직였고 독립된 사고가 상상력을 확대하니 창조 의지가 몰려 왔고 자유와 자율의 사전적 의미의 경계 따위는 무너졌다 이론이다 이념이다 신념이다 다 깨지고 사라졌다 내 편한 내 세상..

2023.10.31

가스라이팅

가스라이팅 - 당하는 자신은 상상조차 못한다 아무리 보아도 객관적 우위에 상대적 하위가 이리저리 조정 당한다 조선의 숙종은 장희빈과 잘 놀다 깨닫는 순간 죽였다 IQ가 전부인 줄 아는 바보는 망가지는 삶을 느끼지 못한다 제3의 누군가 눈치를 주어도 모르니 이를 어쩌나 저를 어쩌나! 살집fleshiness에 빠지는 건 3년이라는데... 저 사람이 갑자기 측은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누군가에 나도? *가스라이팅[gaslighting] 타인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심리나 상황을 조작해 그 사람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일

2023.10.28

인사동시낭송 모꼬지 진흠모264

【인사동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64' 】 2023년10월27일 7시(매달 마지막 금요일) 종로구인사동길52번지 인사14길 詩/歌/演(02)7206264 쥔장:김영희01028203090/이춘우01077731579 1호선종각역→안국동방향700m 3호선안국역→종로방향400m * '30년' : '263 모꼬지' 한옥례 낭송/ 시 이생진 나는 네 앞에서 30년 후를 이야기한 적이 없다 고작 생각한 것은 내일 아니면 모레 그것이 30년, 나는 쫓겨나온 것처럼 밖에 나와 있구나 그런데도 어쩌면 이렇게 반가우나 네가 네 앞에서 너를 위해 쓰던 시를 30년, 그 후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또 한 번 네게 줄 시를 쓰는 일은 너무나 과분한 행복이다 다시 코스모스길 따라 소나무 숲에 묻힌 교실에 들어가 (언니의 양지)에 커..

2023.10.22

청춘의 덫

청춘의 덫 - 벌어 먹고사느라 늘 시간에 쫓기는 무모한 청춘을 보냈던 내가 언제부터였던가 쌓이고 쌓인 그 시간이 상償으로 내어 준 세월 덕택에 이젠 내가 지배하는 시간에서 꿈에도 그리던 낮술을 마신다 술을 좋아하는 게 무엇보다 큰 이유이기도 하지만 역시 시간에서 해방된 유유상종의 몇 안 되는 벗이 있음이다 비틀거릴 정도로 낮술 마시기엔 기력 쇠했음을 잘 아는 처지이고 그리 막갔던 청춘은 없었기에 소풍 떠난 지 오랜 아버지들이 그랬듯이 "딱 반주 한 잔씩!" 을 버릇처럼 외친다 이제껏 낯설었던 낮 커피를 마신다 국밥에 씹혔던 파 마늘과 막걸리 소주 냄새를 헹군다 엽차 한잔에 레지 눈치받았던 다방보다 ‘셀프’라는 독립성에 몇 갑절 편하게 담소한다 누군가에 보고할 것도 누군가에 굽실거릴 일도 없다 카페베네 파..

2023.10.20

“오라바이!”가 더 쩝....

“오라바이!”가 더 쩝.... - 이즘 어디를 가나 시인님! 선생님! 시인이라 불러주는 이도 고맙고 선생님으로 다가오는 이도 감사하다 솔직한 심정은 이렇다 아저씨, 영감님도 좋다 후자가 더 친근하다 가끔 혼술로 들르는 빨간돼지고기연탄집 안면 튼 지 좀 된 마른 몸매 조선족 금순 아줌니는 영감 비위 맞추는 데는 도사다 붉은 셔츠에 보라색 바지 입은 내게 "아자씨는 어째 영화배우 같음다!" 영감태기 순간 우쭐! 째지는 기분이긴 한데 “오라바이!”했음 더 좋았는데... 쩝...

2023.10.17

'시예랑 이생진 詩 콘서트'

2023년 10월 14일 2시 이음아트홀에서는 이생진 시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이생진의 독백 - 박산 시 오경복 낭송 저는 스스로 자연産 시인이고 제 시도 자연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온상에서 길러진 화초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이지요.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쳐 그 혹독한 가난에도 문학을 했습니다. 시를 썼습니다. 힘든 거야 말로 다 하겠습니까. 문학이 혼자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품다가 결국 고독을 찾기로 했고 고독의 질(質)이 으뜸인‘섬’을 찾아다니며 실컷 외로워 보자 했었습니다. 저처럼 운명적으로 시와 예술에 빠진 사람이 누굴까 생각하다가 황진이 김삿갓(김병연)과 고흐를 불러내 오랜 대화를 하다가 대원각의 자야를 불러내 ‘내가 백석이 되어’ 얘기를 나누었지요. 시는 고독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

2023.10.15

정말 좋은 대답

정말 좋은 대답ㅡ 87세의 노인에게 물었다 ㅡ 연세가 87이신가요? ㅡ 노,노! 오십과 죽음 사이에 있죠 ('무초 무초 아모르 왈테르 메르카도의 전설' 중 푸에르토리코인 왈테르에 나이를 묻는 질문에) 간혹 회사 일로 거래처 담당자들과 저녁을 함께하는 일이 있는데 한 친구는 술잔을 비울 때마다 꼬박꼬박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마셔 '禮'를 표한다, 이즘에도 주법을 제대로 교육받은 이런 젊은이가 있구나 여겨 내심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혹여 내가 이들에게 불편한 자리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해서 젊은 친구들과의 회식 자리에서는 일정 시간이 되면 먼저 일어난다. 언제부턴가 작은 모임들에 가면 본의 아니게 중심에 앉는 경우가 많다. ㅡ 선생님 나이 여쭤보아도 될까요 ㅡ 아 예, 쉰과 죽음 사이에서 놀고 있어요 정말 ..

2023.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