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예랑 이생진 詩 콘서트'

박산 2023. 10. 15. 10:00

2023년 10월 14일 2시 이음아트홀에서는 이생진 시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생자 시인의 입장 시, 시예랑 동인들께서는 환호의 '禮'를 다했습니다.

 

시예랑 연출자이며 탁월한 재능의 사회자 이수옥 님이 시작을 알렸습니다

 

 

한옥례 대표의 인사말 (All Photo by 조재형)

 

 

이생진의 독백 - 박산 시 오경복 낭송

저는 스스로 자연시인이고

제 시도 자연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온상에서 길러진 화초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이지요.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쳐 그 혹독한 가난에도 문학을 했습니다.

시를 썼습니다.

힘든 거야 말로 다 하겠습니까.

문학이 혼자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품다가

결국 고독을 찾기로 했고

고독의 질()이 으뜸인을 찾아다니며

실컷 외로워 보자 했었습니다.

저처럼 운명적으로 시와 예술에 빠진 사람이 누굴까 생각하다가

황진이 김삿갓(김병연)과 고흐를 불러내 오랜 대화를 하다가

대원각의 자야를 불러내 내가 백석이 되어얘기를 나누었지요.

시는 고독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좋아하거든요.

앞으로도 대화할 사람들이 많아요.

음악과 철학 시와의 만남 가령 니체와 바그너도....

제 고향은 바다가 가까운 서산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수영을 했고

일제강점기라 해양 훈련도 받았습니다.

16살 때 부친이 장티푸스로 돌아가시고

두 살짜리 막내를 비롯하여 5남매를 키워야 하는

우리 어머니는 살길이 막막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삶은 어두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꿈이나 가정이나 청춘 사랑 따위의 따뜻한 단어들이

시골 바닷가 소년에게서 일찌감치 사라졌지요.

교사가 되어서 시를 생각했고 쓰기 시작했습니다.

1955년 등사판을 밀어 제 첫 시집산토끼를 출간했습니다.

시를 본격적으로 쓰기 위하여

당시 제가 재직하던 서산여고에서 서울 성남중학교로 올라왔습니다.

서울에서 집 얻을 엄두도 못 내는 실정에서

학교 사택을 제공해주었던 성남중학교에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보성중학에서 명예퇴직을 한 1993년 저는 드디어 자유인에 더 가깝게 되었고

전쟁 중에 참전 군인으로 젊음을 보낸 제주도를 비롯한

회귀 본능으로 섬에 더 자주 가게 되었지요.

어릴 적부터 멀리 건너편에 바라보이던 섬들에 대한

끊임없는 궁금증을 시로 실현하기 위해....

아직도 찾아가고픈 섬이 많습니다.

새로운 섬이 아니라 이제까지 찾아다닌 섬 중에서

시 쓰기 좋은 섬을 자주 찾아가고 싶습니다.

그곳은 파도 소리를 들으며 시 쓰기 좋은 섬입니다.

만재도 우이도 여서도 손죽도 등입니다.

만재도 하면 우럭을 잡아 매운탕을 끓여주던 윤 생각이 나고

우이도 하면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가지고 다니며 읽던 한 가 생각나고

여서도 하면 불행하게 생을 마친 김만옥 시인이 생각나고....

최근에는 저와 여러 섬 여행을 많이 다녔던 지리산 벗, 손대기 도 생각납니다.

옛날엔 동백꽃이 진하게 보였는데

이젠 자연 그대로 섬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섬 주인공 얼굴들이 보고 싶습니다.

가고 싶네요.

여든을 살았습니다

구십을 살았습니다

살아보니 80에 안 보이던 것들이 90,

이제야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러분들 많이 걸으세요

책 많이 읽으세요

작은 잔치라 박산이 말하지만

구순이라는 이런 잔치 저는 사실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읽어야 할 책이 많고

써야 할 시가 너무 많거든요

아무튼 고맙습니다

 

생자 시인과 현승엽 가수의 퍼포먼스 및 담론

 

생자의 고흐를 위한 담론이 이어지다가, 음유시인 가수 현승엽의 American Pie, "Long Long Time Ago~"로 시작 "The Music Died~"에 이르러 객석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흔다섯 시인의 강론은 이어지고, 끝말 강조에는 "여러분도 걸으세요! 그리고 꼭 90을 살아보세요!" 했습니다

 

 

이혜정 낭송가의 격정적이며 호소력 깊은 '다랑쉬오름의 비가' 시 연기

 

객석의 생자

오경복 한옥례 대표는 "오늘 '시예랑'의 생자 선생님, 이 공연은 오로지 '詩聖 생자'를 위한, 생자의 시를 위한 공연으로, 우리 시 공연사에 새로운 역사로 기록되는 순간입니다" 라며 생자 시인을 향한 존경의 '禮'를 이리 표현했습니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낭송한 오경복 한옥례 대표와 생자

 

그리운 바다 성산포 - 이생진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 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 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 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 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절망을 만들고

바다는 절망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절망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절망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에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을 좋아했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 놔두었다



삼백육십오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일찍이 시의 혁명을 꿈꾸었던 영국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1792~1822)’는 

그의 저서 시의 옹호(*김석희 역 참조) 중에서;

 

- 근대에도 살아생전에 명성의 정점에 다다른 시인은 아무도 없었다.

 영원불멸인 시인을 판가름하는 재판관은 시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

 

국내 최정상의 시낭송 모꼬지 시예랑 여러분들이 20231014일 혜화동 이음아트홀에서 벌인 이생진 시 콘서트는 생자 선생님과 어깨를 나란히 걸을 수 있는 분들이 마련한 잔치라는 생각입니다

 

이 공연을 위해 애쓰신 시예랑 여러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뒤풀이 대학로 식당에서 다시 생자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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