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덫 -
벌어 먹고사느라
늘 시간에 쫓기는
무모한 청춘을 보냈던 내가
언제부터였던가
쌓이고 쌓인 그 시간이
상償으로 내어 준 세월 덕택에
이젠 내가 지배하는 시간에서
꿈에도 그리던 낮술을 마신다
술을 좋아하는 게
무엇보다 큰 이유이기도 하지만
역시 시간에서 해방된 유유상종의
몇 안 되는 벗이 있음이다
비틀거릴 정도로 낮술 마시기엔
기력 쇠했음을 잘 아는 처지이고
그리 막갔던 청춘은 없었기에
소풍 떠난 지 오랜 아버지들이 그랬듯이
"딱 반주 한 잔씩!" 을 버릇처럼 외친다
이제껏 낯설었던 낮 커피를 마신다
국밥에 씹혔던 파 마늘과
막걸리 소주 냄새를 헹군다
엽차 한잔에 레지 눈치받았던 다방보다
‘셀프’라는 독립성에 몇 갑절 편하게 담소한다
누군가에 보고할 것도
누군가에 굽실거릴 일도 없다
카페베네 파스쿠치 스타벅스 이디아 단골집이 늘었다
이름을 막 부르기도 어렵게 늙어버린 얼굴들
조사장, 산청 선비, 장군이, 석순이 등
무수히 변모한 세상임을 잘 알면서도
정작 자신의 변모는 인식 못 하다가
이 얼굴들에 늘어가는 검버섯을 보고는
고단했던 시절 청춘의 덫이 놓였던
바로 그 흔적이련 하였다
시집 ≪무야의 푸른 샛별≫ 중 (2015 황금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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