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박받는 삼식이

박산 2020. 10. 26. 11:50

「어린 왕자는 달을 좋아했다」 김명옥 화가  

 

「구박받는 삼식이」 48쪽 

 

 

구박받는 삼식이 -

 

광삼씨는 29년간 꼬박꼬박 출근해

열심히 일했다

그 덕에 새끼들 공부시키고

알뜰살뜰 마나님 모시고

그냥저냥 남들만큼은 살았다

 

올해로 퇴직 이 년 차

쓰고 남을 정도로 넉넉히 모아 놓은 돈은 없지만

공부 끝낸 아이들 직장 다니니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

 

삼십 년 경력 살림의 제왕마나님께서는

출근 안 하고 집에 있는 서방이 측은했던지

처음 두어 달 정도는 점심밥도 차려 주셨다

 

퇴직 후, 딱히 정해 놓고 갈 데 없는 광삼씨

아침 운동 뒷산에 올랐다가도

돈도 아낄 겸 꼭 돌아와 집밥을 먹었다

책 보러 도서관에 갔다가도

마나님도 볼 겸

꼭 돌아와 집밥을 먹었다

 

학교, 동네, 사우나, 다양한 친구 모임

컴퓨터배우기 봉사활동 헬스클럽 등등

잡사雜事에 하루 일정 빡빡한 마나님

일식一食이도 아닌 이식二食이도 아닌

하루 꼬박 삼식三食이 광삼 씨에 그새 질렸다

 

아침이면 밥도 안 먹고 나간다는

영식零食이 남편을 둔

봉사활동 친구가 생각난다

 

그래! 이래서 남자는 집구석에 있으면 안 돼!”

 

눈치 없는 광삼씨

평생 벌어 먹여 살려 놓았더니 돈 못 번다고

벌써부터 날 구박해! 이노무 마누라쟁이

눈물 나게 서럽다

 

하루는 시간이라는 순간으로

몇 달은 세월이라는 한숨으로 흘렀다

 

머리 좋은 삼식이

안 먹으면 나만 손해다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깨달았다

 

김치 송송 썰어 넣고

라면 정도는 스스로 끓여 먹었다

 

저녁 끼니 때 지나

7시 넘어도 오지 않는 마나님

하염없이 기다리다

배고파 지치길 몇 차례

물 조절 못해 개죽 끓인 시행착오를 거쳐

이젠 밥도 제법 잘 짓는다

국도 찌개도 좀 끓인다

 

내가 요리에 소질이 있나

최근 이런 생각한 적도 있다

친구 만나 수다 떨다

저녁 늦게 들어오신 마나님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룰룰랄라

내장 빼고 토막 친 생태 한 마리

미나리 파 쓱쓱 어슷썰기로 모양 내 썰고

콩나물 고춧가루 팍팍 넣어

얼큰한 찌개를 끓였다

차려 놓은 식탁

휘휘 수저 저어 맛 본 마나님

아직도 간을 이렇게 못 맞추나! ! ! ”

한심하다 혀를 찬다

 

삼식이 광삼씨 구박에도 아랑곳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너무 짜 ?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세낙사  (0) 2020.11.06
춤을 추고 싶다  (0) 2020.11.02
지하철역 앞 버스정류장  (0) 2020.10.23
부러운 놈 -  (0) 2020.10.19
말마투리  (0) 2020.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