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운 놈 -

박산 2020. 10. 19. 10:49

「피렌체 2018」 이광무 화백 

 

「구박받는 삼식이」 86쪽

 

부러운 놈 -

 

잘잘 끓는 아랫목에 누워

마누라 엉덩이 통통 두드리다

조물조물 허리라도 을라치면

실쭉 눈 흘겨

자리 밖으로

튕겨 빠져나가며

아침밥 지어야지

그 한 마디가 남긴

작은 공간의 갑작스런 썰렁함이지만

가진 것 많지 않은 꽃자리 좁은 남편에겐

가슴 그득 큰 행복 이다

 

별 볼일 없는 쥐꼬리 월급쟁이

하릴없는 소시민 지아비를

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한다는

지지리 공부 못하고

얼굴까지 못생긴 아들놈이지만

어깨가 부스러지도록 안아주고 싶고

곧 늙어 힘 빠질 우리 아부지

제일 좋아하는 술

안 받아주는 놈 하고는

절대 결혼 안 하겠다는 딸년은

가슴속에 넣고 다니는

또 다른 큰 행복이다

 

잘사는 놈이

십박 며칠 유럽여행 가자 해도

내 꼬락서닐 알아야지 하고 참고

그냥저냥 만만하게 사는 놈이

모처럼 공 치자 해도

하루 그린피가 얼만데

꿀꺽 침만 삼키다가도

그래도 사람 사는 게

그런 게 아닌데

그런 게 아닌데

머릿속 갈등이 들어설 즈음

양복 호주머니 속 하얀 봉투

 

친구들 술값도 좀 내고

놀러도 좀 다니고 해요

이 돈 백만 원 다 쓰면

내가 또 채워 넣어드리리다

 

봉투 속 수표

한 장 두 장 세면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헤실헤실거리다

눈물 글썽 중얼 거리길

 

이노무 여편네 누가 돈 달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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