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遺傳

박산 2020. 11. 16. 10:41

「1940년 경 내 아버지」

 

《인공지능이 지은 시》 74쪽

 

 

「유전遺傳」

 

 

관악산 산행이 하루의 첫 일과였던 늘그막 아버지

친구로부터 걸려온 따르릉! 첫새벽 모닝콜

서울대 입구 어디서 만나고 오늘 누가 온다 했고

아침은 어디서 먹고 찻집은 어디로 가고……

통화 중에 간간이 들리는 목 칼칼한 아버지 웃음소리

등산복 약수통 배낭 챙기는 분주한 어머니 치맛단 소리

대청마루 서까래에 붙어 있던 고요가

시나브로 쪽마루 타고 쫓겨나

건넌방 거쳐 아랫방 문풍지를 붕붕 뚫더니

끝방에서 곤히 자고 있는

내 이불깃에 들어 부서졌다

 

아버지 소풍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시 씁네!’ 하는 그럴듯한 명제로 새벽 맞는 나는

시 몇 줄 긁적여 새벽잠 사라진 벗들과 문자질이고

오늘은 무얼 하고 누굴 만나고 무얼 먹을지

아버지보다 더 많은 새벽 수다를 떨고 있지만

대청마루 서까래도 쪽마루도 문풍지도 없는

콘크리트 아파트 속에서는 깨질 고요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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