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무 화백 30

사업가의 길

「사업가의 길」 기계 돌아가듯 딱딱한 업무적 만남이었지만 한 해 두 해 세 해 보낸 세월로 그의 사업 내력은 물론 가족 내력까지 하나둘 알게 됩니다 차돌 같이 작고 단단한 체구의 62년생 공장 운영하는 K 사장은 삶에 어느 누구보다 열심이고 여느 장사꾼의 한 자락 까는 얕은 술수 없는 순수한 그의 대화체는 나름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내게도 하는 말 그대로 들립니다 삼겹살집 화로에 고기를 구워 먹으며 흔들지 않은 막걸리 병 위쪽의 맑은술만 홀짝홀짝 몇 잔 따라 마셨음에도 오늘따라 취기가 빨리 왔는지 사연 있는 아들 얘기 아내 얘기를 반복하며 전에 없이 눈이 붉게 풀어집니다 술자리 파해 헤어지는데 어려운 막내동생 두고 헤어지는 듯 알싸한 마음이 가득 들어 살며시 어깨를 안으며 어여 들어가 쉬시게나! ..

2021.05.06

경솔한 벗 A

'콤플렉스Complex' 이광무 화백 「 경솔한 벗 A 」 후진 대학을 나온 내 꼬라지라서 그렇다면 할 말이 없지만 벗 A와 술자리에서 큰소리 낸 적이 있다 거 말이야 너는 왜 누군가를 말 하려면 서두에 꼭 어디어디 무슨 과 나온 아무개라 얘기하는지, 나이 70이 가까워 지는데 유치하게 언젯적 학교를 아직도 들먹이냐 언젠가 B를 소개한 자리에서도 전공이 무어냐 경솔하게 물었는데 B는 대학을 안 간 벗이었다, 이 무슨 큰 무례인가? 너도 그닥 내세울만한 대학 안 나왔는데 누군가 너를 어디어디 무슨 과 나온 A라고 규정 지어 얘기하면 기분 좋겠냐 머리 득득 긁으며 머쓱해져 하는 말이 내가 그랬나 하면서도 뭐 그 까이꺼 가지고 그리 시비냐는 투다 사람을 어찌 학교 하나로 단순 평가할 수 있는지, 아마도 자기 ..

2021.03.12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

'碧海停泊' 이광무 화백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 」 1963년 노량진 극장 우리 반 코찔찔이 영철이가 흰 광목 목판을 앞으로 메고는 "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 사이다 있어요 콜라 있어요!" 큰소리로 외치며 장사를 했었다 죽기 살기로 먹고살 일도 없는 지금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을 그냥 질겅질겅 씹으며 살아야 하는데 시 쓰는 일조차도 '시작했으면 끝장을 봐야지' 평생 여유 없는 심보를 고집하는 내가 밉다

2021.02.22

요보록소보록

◁구박받는 삼식이 19쪽▷ 「요보록소보록」 움켜쥐었던 재물이 눈 감은 주인 따라가려다 관 뚜껑에 걸렸다 세상 이치 배울 만큼 배웠다 큰소리 뻥뻥 치면서도 내 배 채울 줄만 알았다 모래 한 줌 움켜쥘수록 요보록소보록 빠져나가는 빤한 이치를 무시했다 아는 것들 가진 것들 요보록소보록 들고 나는 구멍을 욕심으로 막은 결과다 묘지 속 관 뚜껑 위에는 요보록소보록 못하는 영혼이 썩은 재물과 산다 * 요보록소보록 : 알게 모르게 야금야금 빠져 나간다는 제주방언

2021.02.15

연예계 먹통

「연예계 먹통」 - 연예인 뿐 아니라 그들 가족까지 스크린을 점령해 웃고 떠드는 시대다 연속극 하나 제대로 보는 게 없고 철 지난 범죄 수사물이나 찾아 시청하며 메이저리그 야구와 여행 프로그램이나 보는 주제이니 수십 수백억을 몸뚱어리 하나로 벌어들인다는 이 시대의 위대한 엔터테이너들! 그들의 이름을 절대 알리가 없다 그나마 60년대 노량진 극장 간판 그렸던 땅 주인 아들이라 어린 나이 공짜 영화 구경을 많이 해서 최민수를 보면 멋쟁이 신사 최무룡이 박준규 보다는 주먹 액션이 멋 있었던 박노식이 허준호 보다는 개성있는 연기파 허장강이 먼저 떠오른다 그렇지만 이들 2세조차 이젠 주류가 아니다 누가 15% 노령인구에 속한 꼰대 아니랄까 TV 패턴을 바꿀 생각이 시쳇말로 단 1도 없다 술자리에서 영서 아우는 불..

2020.11.30

부러운 놈 -

「구박받는 삼식이」 86쪽 부러운 놈 - 잘잘 끓는 아랫목에 누워 마누라 엉덩이 통통 두드리다 조물조물 허리라도 안을라치면 실쭉 눈 흘겨 이부자리 밖으로 톡 튕겨 빠져나가며 “아침밥 지어야지” 그 한 마디가 남긴 작은 공간의 갑작스런 썰렁함이지만 가진 것 많지 않은 꽃자리 좁은 남편에겐 가슴 그득 큰 행복 이다 별 볼일 없는 쥐꼬리 월급쟁이 하릴없는 소시민 지아비를 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한다는 지지리 공부 못하고 얼굴까지 못생긴 아들놈이지만 어깨가 부스러지도록 안아주고 싶고 곧 늙어 힘 빠질 우리 아부지 제일 좋아하는 술 안 받아주는 놈 하고는 절대 결혼 안 하겠다는 딸년은 가슴속에 넣고 다니는 또 다른 큰 행복이다 잘사는 놈이 십박 며칠 유럽여행 가자 해도 내 꼬락서닐 알아야지 하고 참고 그냥저냥 만만..

2020.10.19

그 양반 나였으면 -

그 양반 나였으면 - 오늘 참 괜찮은 양반 만났어요 넉넉한 풍채 소탈해 보이는 입성 벌컥벌컥 막걸리를 어찌나 맛나게 마시는지 덩달아 나도 벌컥벌컥 마셨지요 술술 뱉어내는 한 마디 한 마디 누구나 살아왔던 그렇고 그런 얘기들이지만 어찌나 진솔하게 풀어 놓는지 뭐 입담이 뛰어나기보다는 좌중을 편하게 해주는 재주가 있었어요 알고 보니 이 양반 시를 쓴다네요 고향이자 여전히 진화 중인 도심에서 서성거리며 과거 현재가 비벼진 뒷골목 혼잡한 냄새들을 붓 터치 거친 꾸밈없는 수채화처럼 붉은 건 붉게 파란 건 파랗게 검은 건 검게 그냥 그렇게 쓰고 있다네요 독자를 의식하고 문학을 거창하게 들이밀어 유명해지고 싶은 그런 맘은 애당초 없었다네요 불콰해진 얼굴로 웃으며 말하길 고백하지만 세상사 온통 화나는 일이 수두룩하지만..

2020.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