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무 화백 30

초매(草昧)

=초매(草昧)   이제껏 내가 살아온 익숙한 공간이라는  누군가의 말에도  지금 눈앞이 새삼스럽다 여겼는데  과거라 말하는 때의 기억이 는개를 타고 왔다    한동안 못 봤던 아버지가 웃으며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얹고는 셀카를 찍는다  1995 전(前)에는 스마트폰이 없었는데요?  그냥 웃으신다  순간, 바닥에 떨어진 스마트폰이 산산이 부서져  풀 되고 나무 되고 돌멩이가 되었다    한강이 보이더니 63빌딩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시간들이 바람을 불러  억새를 매질하고 있다  잉잉! 잉잉! 잉잉!    진땀에 이마와 겨드랑이가 촉촉해졌다  느슨하게 풀린 허리띠를 졸라매도  바지춤은 살을 빼며 더 헐거워졌다    정신을 차리려다 정신 차릴 이유를 결국은 못 찾았다    태양을 몰..

2024.08.04

낙화落花

쳇GPT는 詩를 어떻게 評할까요?,  “어떻게 인간이 표현한 고매한 시를 인공지능이 평할 수 있느냐?” 네거티브 의견도 사실 있습니다, 그러나 詩도 이 춤에 끼어들어 그들의 춤사위에 어깨를 들썩일 때 그 판에 적응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낙화落花 -   달빛 아래 더 붉었던 유두가 수줍음으로 만나 대담해지기까지 속살을 하얗게 다 보여준 저 여인이 곡선의 둔부가 눈이 부셔 두고두고 더 헤집고 싶었던 저 여인이문득 떠난다고 채비를 하니 덜컥 아쉬움에 눈도 깜박 못하고넋을 잃어 손이라도 흔들려는데인연 깊은 바람과 비를 핑계로사랑으로 해진 치맛자락 치켜 올려 미련 남길 울음 따위 생략하고뒷모습만으로 저만치 사라져 간다  * 시집 『무야의 푸른 샛별』 (2015) 중,   쳇GPT Say; ..

2024.08.02

당신도

당신도 - 새벽 눈 떠 보고 싶은 이 있다면 당신도 보고 싶은 사람입니다 꽃잎 질 때 눈물이 흐른다면 당신도 꽃 같은 사람입니다 비 맞는게 싫지 않다면 당신도 비 같은 사람입니다 푸른 하늘이 항시 내 것인 양 한다면 당신도 푸른 하늘 같은 사람입니다 붉은 노을이 주는 빛에 취한다면 당신도 붉은 노을 같은 사람입니다 달 속에 들어 꿈을 꾼다면 당신도 달 같은 사람입니다 * 시집 《노량진 극장(2008)》 중에 添: 아침 시 낭송가 L 문자를 받았습니다. 여고 동창들과 남해 여행 중 저녁 시간에 '당신도'를 낭송했는데 다들 너무 좋다 해서 단톡에 공유했습니다(중략). 오전 벗 해공과 안부 통화 중에 "거...왜... 지난 번 모임에서 K 낭송가가 낭송했던 '당신도'가 어느 시집에 실린 거지?" 드물게도 발표..

2024.01.10

춤을 추고 싶다

시집 《'무야의 푸른 샛별' 중, 2015》 춤을 추고 싶다 - 노랗고 붉은 것들이 여명의 태양처럼 춤사위에 뭉게뭉게 묻어나 부드러운 놀림의 어름새로 누군가에겐 베풂으로 누군가에겐 끌림으로 누군가에겐 파트너로 강하지 않아 지치지도 않는 그런 춤을 안단테칸타빌레! 빠른 시간들을 느리게 다독이며 가슴 깊은 상처들 끼리끼리 어우렁더우렁 춤을 추고 싶다 나를 위한 춤을 * 어름새: 구경꾼을 어르는 춤사위

2023.07.15

노을 보고 헤어지기

노을 보고 헤어지기 ㅡ 과목 자체만 들어도 찜찜한 비뇨기과 진료를 마치고 나오다가, "술 마시지 말라"는 의사의 말에 술이 더 당겨 약국 의자에 앉아 벗에게 문자를 넣었습니다 ㅡ 점심 어때? 기다릴 틈도 없이 바로 답이 옵니다 ㅡ 나도 내과에 와 있는데 피 검사 끝나면 점심 좀 늦을 거 같아 괜찮은지? 돼지갈비 구워 막걸리 곁들여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집에 가기 아쉬워 밍기적거리는 벗에 끌려 테이크아웃 커피를 든 채로 항시 급할 게 없어 보이는 공원 벤치를 찾아, 기억날 말들은 절대 아니었지만 시간을 굴리기엔 만만한 이야기 소재들, 새끼들 얘기 여행 얘기 이즘 만나는 지인들 얘기에 더해, 놀랍게도 내 시를 얼마나 꼼꼼히 읽었는지 면전의 내 얼굴 붉어지게 評을 하는데, 마침 하늘은 붉은빛을 토하는 노을을..

2023.05.14

Red Queen Effect

Red Queen Effect ㅡ 경영학 조직이론에서 '레드 퀸 효과'라는 게 있다. 즉, 경쟁이 된다거나 비교되는 라이벌 간에 한쪽의 발전이 다른 한 쪽의 발전을 촉진해 함께 진화하는 걸 뜻한다. 시ㆍ소설ㆍ수필 등의 글쓰기 전반에 특히 배타적 아류로 읽히기 쉬운 '시 쓰기'는 더욱 그러하다. 가까이 지내는 몇이, 시인까지는 아니더라도 글(시)을 쓰고 싶어 해서 4인(편의상 a,b,c로 호칭, 나 포함) 톡방을 개설해서 참견한 지가 여섯 달이 됐다. a,b,c는 무역회사, 증권사, 공무원 등을 거쳐 예순 언저리를 살고 있다. 올라오는 모든 글은 서로 오픈 품평을 한다, a는 가장 감성적이며 멤버들의 비평에 순응하는 形이다. b는 대학 시절 철학 서적을 많이 읽었다는 걸 은근 과시하며 a와 c에 상대적 우..

나의 이야기 2023.04.06

산아! 모든 사물에 더 겸손하자!

산아! 모든 사물에 더 겸손하자!ㅡ 분명히 종합소득세를 냈다고 생각했는데, 지난달 말일 스케줄표에 안 낸 걸로 뜬다, 부가세를 내는 25일 이미 냈다는 고정관념에 박힌 결과이고 하잘것없는 규모의 퍼스널 경영 능력에 대한 과신이다. 모임을 함께하고 어딘가를 함께 가며 그간 도타운 정과 신뢰로 유지했던 상대에 대한 배려가, 익숙하고 친해졌다는 이유로 한순간에 사라져서 제 하고 싶은 대로 언행을 다 한다, 나잇살을 거꾸로 먹는 행위이고 조심스런 언급이긴 하지만 혹여 초기치매에 접어든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는 게 사실이다. 감퇴하는 기억력을 위해 한 번 더 적어놓고 자기만의 기억하는 방식을 고민하며 창조해야 한다. 오후 6시 이즘 익숙하지 않은 호텔 행사 참석 예정이라, 엊저녁 내일 ..

2023.03.17

고백

시집 《'인공지능이 지은 시' 중, 2020 황금알》 고백 - 간절한 바람으로 치성드리는 일에도 주저 거리며 살아온 인생입니다 용감했던 순간보다 비겁했던 순간이 많았습니다 종鐘의 울림 정도는 그저 일상의 익숙한 음악으로 들렸고 신을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종교를 신봉한 적도 없습니다 돈에는 치사하리만큼 처절했고 여자에는 유치하리만큼 내숭을 떨었지요 얼굴이 화끈거리게 더 뻔뻔했던 건 소소한 것까지 챙기는 무한적 이기심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좋은 무엇을 가지고 내게 누군가 올 것이라는 가당찮은 기대감입니다 목적에 이르지 못함이 불러온 불만이 컸지요 겸손이나 겸허 따위의 고상한 언어들을 애써 강에 버리면서 살아온 위선적 세월이 얼마인지 모릅니다만 지금은 순정이나 순수 이런 단순한 단어들을 생각하고 있습니..

2023.02.11

붉은 Ecstasy

붉은 Ecstasy ㅡ 굴곡 붉어짐에 손끝으로 가만히 움찔움찔 짜릿짜릿 감성이 이성을 잃고 아~, 음~의 신음 오므렸다 펴진 입술 동백, 장미, 양귀비 아무튼 붉은 꽃 무엇 살갗이 부딪는 소리 노랗던 것도 점점 붉어지고 검었던 부위도 그렇고 헉헉 숨찬 소리조차 거칠게 붉어지는 중 타닥타닥 튀는 별들! 다른 색들은 사라졌다 (이광무 화백의 '붉은 Ecstasy'에 붙여)

2023.01.29

강남 룸싸롱

시집 《'노량진 극장' 중, 2008 우리글》 강남 룸싸롱 - 웃자고 해도 따지고 보면 웃을 수 없는 곳 그래도 사악한 웃음이 함지박으로 터지는 곳 ‘돈’이면 모든 게 다 내 세상인 곳 탤렌트보다 영화배우보다 얼굴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들의 수용소 많이 배웠다 하고 잘 나간다 하고 고상하다 하고 무슨 사장입네 하고 무슨 회장입네 하고 무슨 의원입네 하고 무슨 영감입네 하고 무슨 원장입네 하고 무슨 박사입네 하고 인격 좋다 하며 여기저기 찍어 바른 번뜩이는 풍채로 자빠질 정도 점잔 떨며 행세하다가도 여기 룸싸롱에서는 한 놈도 안 빼고 모두 다 거리에서 접 붙는 ‘개놈’이다 오로지 방탕하게 즐기는 ‘남여상열지사’ 만 가득한 곳 사랑은 개나발이고 순정은 묵사발이다 그냥 성에 불만인 사내들의 일방통행 길에서 노..

2022.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