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보고 헤어지기 ㅡ
과목 자체만 들어도 찜찜한 비뇨기과 진료를 마치고 나오다가, "술 마시지 말라"는 의사의 말에 술이 더 당겨 약국 의자에 앉아 벗에게 문자를 넣었습니다
ㅡ 점심 어때?
기다릴 틈도 없이 바로 답이 옵니다
ㅡ 나도 내과에 와 있는데
피 검사 끝나면 점심 좀 늦을 거 같아
괜찮은지?
돼지갈비 구워 막걸리 곁들여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집에 가기 아쉬워 밍기적거리는 벗에 끌려 테이크아웃 커피를 든 채로 항시 급할 게 없어 보이는 공원 벤치를 찾아, 기억날 말들은 절대 아니었지만 시간을 굴리기엔 만만한 이야기 소재들, 새끼들 얘기 여행 얘기 이즘 만나는 지인들 얘기에 더해, 놀랍게도 내 시를 얼마나 꼼꼼히 읽었는지 면전의 내 얼굴 붉어지게 評을 하는데, 마침 하늘은 붉은빛을 토하는 노을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ㅡ 이즘은 노을만 보아도 왜 저리 이쁜지…
혼잣말인지 날 들으라는 말인지 모르게 중얼거리던 벗은
그간 나와 만나던 과거의 습관
한잔 더 하자는 말을 끝내 기억해 내지 못하고는 헤어졌습니다
약 봉투를 신주단지처럼 손에 꼭 쥔 벗의 등짝이 지하철 계단으로 사라질 때까지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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