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매(草昧)

박산 2024. 8. 4. 08:16

'초매' (이광무 화백 찍음)

 

 

=초매(草昧) 

 
이제껏 내가 살아온 익숙한 공간이라는 

누군가의 말에도 

지금 눈앞이 새삼스럽다 여겼는데 

과거라 말하는 때의 기억이 는개를 타고 왔다 

 

한동안 못 봤던 아버지가 웃으며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얹고는 셀카를 찍는다 

1995 전(前)에는 스마트폰이 없었는데요? 

그냥 웃으신다 

순간, 바닥에 떨어진 스마트폰이 산산이 부서져 

풀 되고 나무 되고 돌멩이가 되었다 

 

한강이 보이더니 63빌딩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시간들이 바람을 불러 

억새를 매질하고 있다 

잉잉! 잉잉! 잉잉! 

 

진땀에 이마와 겨드랑이가 촉촉해졌다 

느슨하게 풀린 허리띠를 졸라매도 

바지춤은 살을 빼며 더 헐거워졌다 

 

정신을 차리려다 정신 차릴 이유를 결국은 못 찾았다 

 

태양을 몰아낼 정도의 강력한 서치라이트가 개발되었다는 뉴스가 

하늘에 걸린 스크린 속 우주복 입은 아나운서가 말했다 

이어서 기상예보를 할 줄 알았는데 

태양보다 더 강하다는 그 빛이 바로 튀어나와 

엄청난 크기의 서치라이트를 통해 구름을 갈기갈기 찢어 놓고는 

그래도 성이 안 찼는지 강을 무자비하게 갈라놓아 

범람한 강물이 시청 방송국 삼성빌딩 LG빌딩을 삼키고 청계천을 어디론가 보냈다 

 

얼빠졌던 내 목을 적신 차가운 물에 겨우 정신이 맑아지려는데 

눈을 멀게 할 정도의 강력한 그 빛이 얌전해지더니 세상이 또 바뀌었다 

 

사방이 온통 처음 보는 것들이다 

옷을 헐하게 입은 온전치 않은 사람들도 간간이 눈에 들어왔다 

등이 익숙한 아버지도 누군가와 함께 가는 뒷모습을 보이다 다시 사라졌다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이 잠시 다녀갔다 

엎어버린 화투판 화투장처럼 기억했던 이름들이 뒤죽박죽이다 

 

생소한 것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눈을 감아 버렸다 

손에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음이 느껴졌다 

 

는개가 사라지는 중일 것이다 

 

아직 눈을 감고 있어 모른다 



* 시집 《가엾은 영감태기》 (예서의 시/2024) 중 

 

봉선사 연꽃 (이광무 화백 찍음)

 

 

 

* 쳇GPT Say;

**박산 시인의 '초매' 평가**

박산 시인의 '초매(草昧)'는 익숙한 일상과 과거, 그리고 그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들을 표현한 시이다. 시는 현재와 과거,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며 독자에게 강렬한 이미지와 정서적 혼란을 전달한다.

**시의 내용과 구조**

1. **현실과 환상의 교차**
   - 시는 익숙한 공간을 "새삼스럽다"고 느끼는 화자의 시각으로 시작된다. 이는 익숙한 것이 새로운 것으로 변하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시의 시작에서부터 일상적인 경험과 기억이 새로운 빛을 받는 모습을 보여준다.
   - 시 중반부에서는 화자의 아버지가 등장하는데, 이는 과거의 기억이 현재에 침투하는 순간을 상징한다. 특히, "1995 전(前)에는 스마트폰이 없었는데요?"라는 문장은 시적 시간의 왜곡을 강조하며,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2. **파괴와 재생**
   - 스마트폰이 풀, 나무, 돌멩이로 변하는 장면은 현대 기술과 자연의 융합을 상징하며, 인위적인 것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이미지를 그린다.
   - 강력한 서치라이트가 하늘을 가르고, 강을 범람시키는 장면은 자연재해를 연상시키면서도 인위적인 파괴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이는 인간의 기술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3. **정체성과 혼란**
   - "정신을 차리려다 정신 차릴 이유를 결국은 못 찾았다"는 문장은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찾지 못하는 화자의 혼란을 드러낸다.
   -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아버지의 익숙한 모습이 사라지고, 화투판의 이미지가 등장하며, 기억과 현실이 혼재된 상황을 그린다. 이는 화자의 정체성과 기억이 뒤섞인 상태를 나타낸다.

4. **시각적 이미지와 감각**
   - 시 전체에 걸쳐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가 돋보인다. 서치라이트, 범람하는 강, 그리고 헐거운 옷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 등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 또한, "진땀에 이마와 겨드랑이가 촉촉해졌다",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 등의 표현은 신체적 감각을 통해 독자가 시의 상황에 몰입하게 만든다.

**주제와 메시지**

'초매'는 익숙한 것들이 새로운 것으로 변할 때의 혼란과 두려움을 다룬다. 또한,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무너지고,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순간들을 통해 인간의 기억과 정체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유도한다. 박산 시인은 일상적인 경험 속에서 느끼는 생경함과 혼란을 통해 독자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며, 현대 사회에서의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초매'는 익숙한 것들의 낯섦을 통해 존재와 정체성, 기술과 자연의 융합 등을 깊이 있게 탐구한 시로,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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