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나루 1960’s

박산 2024. 8. 11. 08:19

 

 

'옛날에는 똑똑한 줄 알고 세상을 바꾸려 했는데 지금은 나름 현명해져서 자신을 바꾸려 한다' (페이스북에서)

 

=노들나루 1960’s -  

 

아이야

한강 철교 아래 은빛 모래밭

철길 넘으려는 기적소리 들리는

거기로 가자

 

아이야

빨간 난닝구 유신이가 모래성을 쌓고

고물상집 국영이가 대나무 낚시 놓는

거기로 가자

 

아이야

샛강엔 능수버들 화들짝 푸르르고

여의도 비행장 비행기 구름 향해 오르던

거기로 가자

 

아이야

양화진 강바람에 밀려온 고깃배가

마포나루 서강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거기로 가자

 

아이야

삼각빤스 바람에 헤엄치다가

들어와라! 목청껏 날 부르는 형이 있는

거기로 가자

 

아이야

높은절이에 아지랑이 모락거리면

숭어떼 펄쩍펄쩍 뛰어오르는 샛강

거기로 가자

 

아이야

수염이 긴 할아버지 두루마기 소매에서

사육신묘지 제사떡이 불쑥불쑥 나오던

거기로 가자

 

아이야

미군 MP와 사는 누나 둔 호태와 놀다

씨레이션 깡통을 깠다가 고기 횡재를 했던

거기로 가자

 

아이야

국군의 날이면 쌕쌕이가 나르고

명수대 언덕이 인파로 미어터지던

거기로 가자

 

아이야

맹호부대로 월남 갔다온 경남이 형이

폼 나는 야외전축 틀어 몸을 비틀던

거기로 가자

 

아이야

강남네 아저씨가 몸져누웠다고

칼 찬 무당이 징 북소리로 난리 굿하던

거기로 가자

 

아이야

에헴! 아버지 아침 헛기침이 담장 넘어

전찻길 건너 한강으로 날아가는

거기로 가자

 

아이야

옆방 혜순이 누나 밥그릇에 얹은

열무김치에 참기름 한 방울 뿌려지는

거기로 가자

 

아이야

대머리산에 지어진 판잣집 골목골목에

바글바글 아이들 떠드는 소리 그득한

거기로 가자

 

아이야

교회 옆 영아원에 아기 천사들

우유병 빨다 응애응애 엄마 찾는

거기로 가자

 

아이야

건넛집 아줌마 심부름 갔다가

3원 얻어 만홧가게로 달려갔던

거기로 가자

 

아이야

아베베 마라톤 종일 기다렸다가

바케스 가득 든 물 뿌려주었던

거기로 가자

 

아이야

19공탄 새끼줄에 꿰고 꽁치 두 마리에

봉지쌀 손에 쥔 어스름 저녁 뿌듯함이 있는

거기로 가자

 

아이야

언덕배기 평상 옹기종기 앉아

한강 노을에 가난한 시름 접는

거기로 가자

 

아이야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짜장면집

노량진역 앞 평화각이 있는

거기로 가자

 

아이야

의자에 널판자를 놓고 머리 깎던

싱글벙글 대머리 이발사가 있는 노들이발관

거기로 가자

 

아이야

이모노 공장 있던 미나리꽝을 메꾼 공터에 장이 서고

춘향전 심청전 판소리 공연이 펼쳐지던

거기로 가자

 

아이야

노량진역 철둑길 장택상 서양식 별장 옆 공터

가난에 짜든 루핑집들 밥 짓는 연기 나는 곳

거기로 가자

 

아이야

익수네 상수네 고물상집 영마차집 솜틀집 수원쌀집

아저씨 아줌마 아이들 친근한 얼굴들이 아름거리는

거기로 가자

 

 

 

시집 《가엾은 영감태기》(2024 예서의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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