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무 화백 30

불결한 김치찌개집

불결한 김치찌개집 ㅡ 사무실 인근 김치찌개집은 점심 시간에 번호표를 받아야 할 정도로 손님이 많다. 듬성듬성 썬 돼지고기를 듬뿍 넣고 끓여낸 찌개가 일단 푸짐해서 젊은 직장인들 점심 한 끼 배 불리 먹기에는 손색이 없다. 오육 년 전에 몇 번 갔었지만 정나미 떨어지는 일이 있어 발길을 끊었었는데 최근 식당을 옮겼다고 우리 회사 윤 사장이 가자 해서 오랜만에 갔다. 숟가락질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정나미가 떨어지는 건 여전했다. 먹으러 가자 한 윤 사장 민망할까 억지로 꾸겨 넣은 찌개는 체할 것 같았다. 구글에서 이 김치찌개집 어떠했나, 별표로 물어와 다음과 같이 답변을 달았다; ☆ 절대로 가면 안 되는 불결한 식당 손 입 코 닦고 땀 닦은 손님 물수건으로 먹고 난 후 테이블을 겉보기 아주 깨끗하게 어찌나 ..

나의 이야기 2022.06.02

인디밴드Indie band

시집 《'무야의 푸른 샛별' 중, 2015 황금알》 인디밴드Indie band - 얼핏 보면 밝은 것 같지만 온통 검붉은 풍선들이 천장 여기저기에 걸려 喜·怒·哀·樂 어느 것도 아니게 그냥 헤죽거리고 있는 집에 잔뜩 낀 허영 실현해 볼까 그냥저냥 봐줄 만한 몸뚱어리에 웃음을 미끼로 들어갔습니다 귀청 찢을 듯 강한 전자음악 애초 노래 재능 없는 쉰 목소리들 반복되고 강제된 로봇 춤들 밤낮 구분 사라진 곳에 내내 뜨지 않는 별만 바라보는 일 아무리 마셔도 갈증에 타들어 가는 혀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 이런 것들에 으스스 진저리치다가 머릿속 거품 일순간 쑥 빠져나간 느낌 앞뒤 볼 것 없이 문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변하는 게 싫은 좁은 골목 통치마가 푸근한 시장 아주머니 짐 자전거, 택배 오토바이의 움..

2022.05.25

알고리즘에 쪽팔렸다

알고리즘에 쪽팔렸다 ㅡ 최근 안 다니던 삼성동 L호텔에서 스테이크를 썰었고 여의도 등심 한우집을 갔었고 엊그제는 서교동 G호텔 스시를 먹었다 허구헌날 종로 뒷골목이나 사는 동네 근방 허름한 식당 찾아 룰룰랄라 막걸리나 마시며 다녔는데 알고리즘이 놀랐나 보다 그 호텔 어떠냐고 그 식당 어떠냐고 자꾸 묻고는 별점을 매기란다 아이고 이노무 알고리즘 이 시키가 정말! 촌놈 서울 음식 구경 훈련 시키려나 보다 나 서울 토박인 줄... 고건 몰랐지 이 눔아 끄응 하고 야단치듯 중얼거리길 알고리즘, 너 이 시키 요것도 모르지 한때는 짜샤 나도 거기 일수 찍던 눔이야! 더 이상 쪽 팔리게 하지 마 짜샤, 알써!

2022.01.13

다시 평지平地에 이르러

시집 《 '노량진 극장' 중 2008, 우리글》 다시 평지平地에 이르러 다시 평지에 이르러 다시 평지에 이르러 다 잊어버렸습니다 기억나는 건 붉은 색 망토 입고 하늘을 날던 기쁨과 그 기쁨 배가하려 청록계곡 어딘가에 머물며 가쁜 숨 몰아쉬었던 어설픈 욕망의 시련 뿐 이제까지 온 감사함에 대한 예의도 날 수 있었던 건강함도 저 만치 보이는 ‘조금만 더’ 의 과욕 만을 따랐을 뿐 계곡 맑은 물 속 양손 집어넣고 느낀 청량함은 그 때뿐이고 구름 속 날개 부딪히는 신선함을 그저 당연시 한 나는 받고 먹을 줄만 아는 에고이스트 그 한계는 그 때 뿐 이어야지요 산맥이 기지개를 켜고 그를 재운 산하는 아직 여전한데 나는 내려앉아 숨을 고르고 자아는 춤을 추며 또 다시 날아오를 생각에 상념의 평화를 채우고 있습니다 가..

2022.01.01

Convenience

시집 ≪'노량진 극장' 중, 2008 우리글≫ Convenience 누가 돈 낼까 전전긍긍하여 먹는 밥 한 끼 보다는 냉수에 밥 말아 김치 찢어 씹는 게 맛있습니다 좋아하지도 않는 술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며 마시느니 냉수 한 사발이 시원 합니다 사사건건 캐물어 대답하기 싫은 이랑 백날 앉아 있느니 빈방에 누워 코 후비는 게 더 편 합니다 가기 싫은데 억지로 체면 생각해 갔다가 김새는 것 보다는 조금 미안하더라도 안가는 게 머릿속이 가볍습니다 순간적 욕정에 눌린 정사情事 후 허겁지겁 속옷 찾아 입는 것 보다는 달콤한 입맞춤 후 가벼운 포옹이 훨씬 상큼 합니다

2021.10.05

Who am I ?

ㅡ 'Woman Player After Olympic Games' 이광무 화백 ㅡ 《인사島 무크지 진흠모 이야기 7 중, 2021》 [ Who am I? ] 막걸리 자리에서 “마셔! 마셔! 사는 게 뭐 있나 도사 흉내나 이렇게 내며 한평생 이리 살다 가는 거지”하며 유행가 가사처럼 쉽게 읊조리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볼수록 '사는 게 뭔지….?'는 인생 거대 담론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것도 예순 넘은 지 오랜 법적 장년에게는 말입니다. 과연 나는 뭐 하고 살았고 뭣을 건졌고 뭣이 남았나. Who am I? 어머니의 바다에 아버지가 쏜 화살 요행僥倖한 파문波紋의 꼴이 찌질이 세일즈맨 실패한 장사꾼 삼류 시인 도대체 나는 누굽니까 보잘것없는 나의 과거 완료형에 'Who am I?'라는 짧은 시로 자신에게 진지하..

나의 이야기 2021.08.14

움직이는 그림

시집 《'인공지능이 지은 시' 중, 2020 황금알》 움직이는 그림 ㅡ 가뭇없던 그 그림이 다시 나타난 건 그리 오래된 얘기가 아니다 노랑, 파랑, 딱 집어 정확히 말하라고 종주먹을 들이대면 더 당황스러워져서 표현하기 어려운 색깔 푸른빛에 잿빛 섞인 바탕이라고나 할까 색 바랜 똥색 테두리의 액자를 뉘어 놓고 쌓인 먼지를 입으로 풀풀 불어 내고는 외눈 박힌 도깨비 손에 든 빗자루로 탁탁 털어냈다 대청마루 섬돌, 마당 한 귀퉁이에 절구통이 놓여있다 녹색 페인트 듬성듬성 벗겨진 대문에 붙어있는 담장 쇠창살을 타고 긴 얼굴을 가장 슬프게 한 삐쩍 마른 수세미 하나가 손대면 바스락 부서질 것 같은 잎사귀 몇 장에 얽히어 걸려있다 전봇대 거미줄 같이 엉킨 전깃줄에서 용케 뻗어 나온 한 ..

2021.07.29

부속품 UP6070

시집 《'인공지능이 지은 시' 황금알 2020 68쪽》 「부속품 UP6070」 원래 난 빽빽한 회로기판에 꼭 끼어 있었다 호흡조차 공동 규칙이었던 이 배치를 벗어난다는 건 죽음, 바로 그것이었지만 어느 날 나만 쏙 뽑혀 버려졌다 불에 태워지려는 순간 천운이 내게 내렸다 재활용이란 한물간 유행가로 태그 위의 넘버링은 'UP6070' 가까스로 이어진 전설 같은 생명이었지만 죽을 듯한 외로움이 준 조급함으로 다시 끼어들 회로기판이 절실했다 얼마의 기다림이었을까 녹슬어 부서진 부속품 하나가 바람에 날려 사라진 빈자리가 났다 있는 힘 다해 냉큼 끼어들고 보니 상하좌우가 삐뚤빼뚤 헐렁하다 나도 여기서 녹슬고 부서지는 중이다 통증을 견디기 쉬운 일은 아니지만 외롭고 그리움에 떨어야 하는 그 지독한 몸부림의 아픔보다는..

2021.06.24

이발소 小景

「이발소 小景」 그저 두어 번 이발로 안면 있는 한 쉰 됐을 이발소 아주머니가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이지만 진정성이 느껴지는 웃음으로 ㅡ어서 오세요, 선생님! 어째 안 오시나 했어요? ㅡ나를, 요? 왜요? ㅡ멋지시잖아요! ㅡ.... (순간 당황해서 뭐라 해야 할지, 옆 다른 손님 눈치도 보이고) ㅡ코로나 때문에 머리가 많이 기셨지요? 다른 손님들도 자주 못 오세요 ㅡ근데 선생님 혹시 글 쓰는 일 하세요? ㅡ...(잠시,,,날 아나? 하고 망설이다가)...아니요 글은 무신요, 근데 왜요? ㅡ뵐 때마다 제가 시골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시인이셨던 국어선생님 꼭 닮으셨어요 ㅡ허허! 짝사랑을 닮았다니 이거 내가 영광입니다 좋아하는 친구와 쌈밥 점심에 낮술로 막걸리 마시고는 긴 머리카락이나 자를까 왔는데 젊은 아주머..

2021.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