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의 길

박산 2021. 5. 6. 13:18

◀Black Nude 1▶ 이광무 화백

 

 

「사업가의 길」

 

기계 돌아가듯

딱딱한 업무적 만남이었지만

한 해 두 해 세 해 보낸 세월로

그의 사업 내력은 물론

가족 내력까지 하나둘 알게 됩니다

 

차돌 같이 작고 단단한 체구의

62년생 공장 운영하는 K 사장은

삶에 어느 누구보다 열심이고

여느 장사꾼의 한 자락 까는

얕은 술수 없는 순수한 그의 대화체는

나름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내게도

하는 말 그대로 들립니다

 

삼겹살집 화로에 고기를 구워 먹으며

흔들지 않은 막걸리 병 위쪽의 맑은술만

홀짝홀짝 몇 잔 따라 마셨음에도

오늘따라 취기가 빨리 왔는지

사연 있는 아들 얘기 아내 얘기를 반복하며

전에 없이 눈이 붉게 풀어집니다

 

술자리 파해 헤어지는데

어려운 막내동생 두고 헤어지는 듯

알싸한 마음이 가득 들어

살며시 어깨를 안으며

어여 들어가 쉬시게나! 하니

눈가에 살짝 이슬이 맺히더니

안 하던 90도 폴더 인사로

고맙습니다, 고문님! 하고는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작아진 등짝을 보이고 가는데

바닷가 고층아파트 사이사이

마침 야속한 골바람까지

예순 줄 들어선 그의 처진 어깨를 때립니다

 

골바람 등진

귀갓길 대리운전 차 안에서

함께 마셨던 앞자리 62년생 동갑내기

우리 회사 사장 어깨에서도

똑같은 무언의 갑갑함이 느껴졌습니다

 

이 순간 가슴을 파고드는 생각이

이 찬란한 봄날

이 두 구멍가게 사업가가

다 잊고 한 사나흘

꽃구경이나 실컷 다녔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 간절했습니다

 

하루 종일 일에 치이는 것도 모자라

가정사에도 시달리며

순탄치 않게 실재(實在)하는

현장에서 번민하는 사업가

이 둘을 마주하면서

사실은

.

.

.

사업 선배로서

영업이 어떻고

매출이 어떻고 따위의 컨설팅보다는

부둥켜 꺼어이 꺼어이

함께 울어 주고 싶었습니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Horror Life  (0) 2021.05.17
가고 싶은 나라  (0) 2021.05.10
휘뚜루마뚜루」  (0) 2021.05.04
옷 잘 입는 사람이 좋다  (0) 2021.04.26
횡재  (0) 2021.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