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34

젓가락질은 인격이다

☆ '舞姬' Drawn by 조남현 ☆ 젓가락질은 인격이다 ㅡ 무언가를 국내외에 팔기 위한 직업을 평생했던 사람으로서 내국인은 물론 동ㆍ서양 사람들과도 식사나 술자리를 자주 해 오고 살았다. 일전에 우리 회사 윤 사장과 지방 도시에 위치한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내 또래의 A 사장을 만나러 갔다. 나 역시 구면인 분이었는데 점심으로 그 지방에서는 꽤 알아주는 시설 좋은 고깃집에서 갈비탕을 먹었다. 그런데 마주 앉은 A 사장의 젓가락질을 보고는 내심 당황했다. 엄지 검지 중지 사이로 젓가락을 가볍게 잡고 반찬을 집는 게 상식인데 젓가락 두 개를 움켜쥐고 숫가락을 덧대어 갈빗살을 벗겨 내는 모습에, 보는 내가 아슬아슬 불안해질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식사 중에 내가 묻는 말 이외에는 일체의 대화가 없었다. 후..

나의 이야기 2021.08.01

참을성 없는 어른

참을성 없는 어른 - 예전 60년대 초 우두라 부르는 천연두 백신 주사를 맞았다. 우리 세대는 아프기로 소문난 이 주사 흔적을 어깨 근방 팔에 평생을 지니고 산다. 가난했던 이 시절 의료 물자 역시 부족했던 시절 알코올램프로 소독을 해서 사용을 하니 ‘불주사’라고도 했으니, 열 살 남짓의 어린 초등학생들이 이 주사를 맞는 날 교실은 공포의 울음바다가 되었지만 울지 않는 아이 몇은 칠판 앞으로 나와 선생님으로부터 훌륭한 아이로 참을성을 칭찬받았다. 나 역시 영특한 머리보다는 고집 세고 우직한 편이다 보니 참을성이라도 내세워 선생님께 칭찬받으려 참았던 훌륭한 아이였다. 한번은 전봇대 줄을 타고 오르다 떨어져 개천에 박혔는데 무릎뼈가 드러날 정도로 찢어져서 피가 낭자하게 흘렀다. 어머니께 혼날까 집에 들어와 ..

나의 이야기 2021.07.23

영화 '인턴'

영화「인턴」 어린 시절 우리 집 땅에서 노량진 극장 간판을 그린 인연으로 초대권도 얻고 간판쟁이 화가 아저씨 손도 잡고 극장을 수시로 드나들며 영화를 보고 자라 지금까지도 영화를 좋아한다. 외출이 신경 쓰여 시간이 남는 이즘에는 영화관을 마음 놓고 못 가니 TV를 통해 영화를 종종 보는데 오늘은 '인턴'을 세 번째 보았다. 30세 여성 CEO 줄스(앤 헤서웨이)가 운영하는 회사에 수십 년 직장생활로 익힌 노하우와 풍부한 인생 경험이 있는 70세 벤(로버트 드니로)이 인턴으로 채용된다. 주어진 업무래야 이메일 체크와 문서 수발이지만, 이야기 전개는 능력이 뛰어난 CEO 줄스가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에 참석해서 채용된 자신의 인턴(벤)에게 처음 시큰둥했었지만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벌어지는 인간관계 형성 과정의..

나의 이야기 2021.07.18

TV가 볼 거 없다

TV가 볼 거 없다 ㅡ 예순 넘은지 오랜 벗들 만나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공감하는 말이다. 연속극이래야 말도 안 되는 치정에 얽힌 가족사에 신분 격차를 극명하게 강조하고는 노골적으로 니 편 내 편을 갈라놓고는 어설픈 공정을 들이댄다. 대다수 황금 시간대 프로그램이 깔깔대며 가볍게 웃고 떠드는데 집중한다. 그 눔이 그 눔으로 보이는 젊은 연예인들이 떼로 나와 절대 이해 안 가는 변질된 언어로 끼리끼리 떠들다 끼리끼리 웃는다. 왜 저들이 웃는지 이유도 모르고 보고 있자니 하나부터 열까지 정나미가 뚝뚝 떨어지고 이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들에 지친다. 바뀐 세태에 부적응하는 나는 성장한 자녀들에게는 한물간 꼰대로 TV 도사 아내에겐 고집불통 영감탱이가 된다. 그러니 그러니 제3의 시각으로 가만히 나를..

나의 이야기 2021.07.15

생애 첫 아르바이트

삼척 , 벗들과 함께 2021 여름 「 생애 첫 아르바이트 」 1963 아니면 1964년인가 초등학교 때 첫 아르바이트를 해 봤다. 아이스크림이란 제대로 된 영어 이름을 모르던 시절 노량진역 앞에 '깨끼집' 밀양당이 있었다. 지금처럼 우유나 고급 당분이 들어가는 아이스크림은 아니었지만 '깨끼' 혹은 '아이스깨끼'라고 부르는 사카린 단맛이 강한 얼음과자였다. 이 깨끼집 밀양당에서 주로 소년들이 깨끼를 스티로폼 상자에 받아 어깨에 메고 다니며 길거리와 골목골목을 다니며 막대아이스깨끼를 팔았다. 동네 콩나물 공장집 아들 정병택이가 이 깨끼장사를 해서 솔찬히 돈을 벌었는지 만화광이었던 내 만화 가게 비용을 종종 대줬다. 푹푹 찌는 무더위가 한창인 어느 날, 깨끼장사를 해서 좋아하는 만화 가게 비용을 벌고 싶어도..

나의 이야기 2021.07.12

음식이 주는 행복

「음식이 주는 행복」 시인 소리를 듣고는 있지만 거친 한강 바람 맞으며 살아서인지 포근함보다 아직은 모난 데를 둥글게 갈아내지 못하고는 늘그막에도 체면 우선하는 서울 사람 틀을 못 깨고 살고 있다고 자책하곤 합니다. 그럼에도 예전에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던 내적 진실의 궁극점인 '행복'이란 단어와 친해지려 부단히 노력 중입니다. 행복은 '욕구에 대한 만족의 정도'라는 생각입니다. 흔히 성욕 식욕 수면욕을 인간이 지니는 세 가지 욕구라 말합니다. 최근 읽은 책에서 성욕과 식욕은 밀접한 관계로 음식을 배불리 먹은 후에는 성욕이 사그러들고, 반대로 섹스 이후에는 공복감이 줄어드는 현상을 보인다고 합니다. 성욕이 사라져서 그런가요? 이즘 부쩍 몇 가지 음식에 행복을 느낍니다. 칠레産 1만 원대 카베르네 소..

나의 이야기 2021.05.24

행복한 낙원

「행복한 낙원」 자연인이라는 TV 프로그램을 가끔 봅니다. 사연을 들어보면 세상 사는 일에 지쳐 선택한 순수 자연에 의탁해 살아가는 쉽지 않은 그들의 삶의 고뇌가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자연인에게는 老莊의 玄學의 경지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단어에 으뜸은 행복하다, 편하다, 자유롭다, 여기가 나만의 낙원이다 라는 자기만족의 말입니다. 일맥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누구나 각자가 추구하는 만족의 정도는 다 다르니 말입니다. 주제를 좀 벗어나는 듯한 말입니다만, 아내가 오래전에 실버 잡지사(노인 잡지) 기자 노릇할 때 당시 수도권에 위치한 고급 실버타운을 취재했었습니다. 의사와 간호사가 상시 대기 중이고 삼시 세끼가 훌륭한 자체 식당에서 제공되니 밥해 먹을 일도 없습니다. 여기 입주..

나의 이야기 2021.04.29

영화 미나리

「영화 미나리」 1990년대 초 미국 출장 중 20일 넘게 머스키곤 뉴욕 디트로이트의 공장 방문에 심신이 지쳤을 무렵 시카고 사시는 막내 이모 댁에 가서 2박 3일을 묵었다. 어린 시절 이모는 우리 집에서 학교를 다녔을 정도로 큰누나 같은 친밀감이 있는 사이였다. 이모부가 사업에 실패해 1970년대 초 아이 둘 데리고 미국 이민을 떠났었다. 나 역시 20여 년 만의 반가운 해후였다. 이모는 내게 여러 날 출장 여독이 클 터이니 미시건湖와 유서 깊은 시카고 시내 드라이브 관광을 하자 했으나 나는 이모 가족이 실제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어 운영하는 가게에 나가 일을 돕겠다고 자청했다. 시카고 슬럼가에 바(선술집)와 리꿔 스토아(창고형 술 판매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자가 건물이니 그만하면..

나의 이야기 2021.04.15

감성적 TV 사기

「감성적 TV 사기」 나의 TV 시청 프로그램은 3월부터 10월까지 메이저리그(MLB)가 가장 중요하고 여행 그리고 추리 수사극에 한정됩니다. 지난해 11월 MLB 야구 시즌이 끝나자마자 서재의 작은 내 전용 TV가 맛이 갔습니다. 야구 시즌도 끝나서 시즌 시작하는 봄에나 사야지 했는데, 새해 들어 아내 전용인 거실의 메인 TV에 실금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보는 TV야 금액으로 따져 크게 신경 쓸 일 아닌데 온 가족이 보는 메인 TV는 얘기가 다릅니다. 내가 보는 45인치 서재용 TV나 한 대 사면 됐지 했는데, 배보다 배꼽이 한참 더 큰 메인 TV 75인치를 구입해야 한다고 집사람과 딸은 주장합니다. 작은 평수 아파트에 무슨 75인치냐 하고 절충한 끝에 65인치로 겨우 합의(?)를 끝내고 서너 ..

나의 이야기 2021.01.29

내 사랑하는 벗 月岩

사진: (좌로부터) 조철암 낭송가 이생진 시인 月岩 김경구 박산 「내 사랑하는 벗 月岩」 ㅡ 서울 개인택시 모범기사 중마고우 '월암 김경구'는 내 사랑하는 벗입니다. 말로만 모범이 아니라 그의 건실하고 근면한 삶 자체가 일설로 표현 부족할 정도로 他에 모범입니다. 이즘 보기 드문 효자 효녀 아들 딸 모두 훌륭히 키워 대기업에 입사시키고 헌신적인 부인의 내조까지 있으니, 이제는 좀 "나, 팔자 늘어졌다!" 할만도 한데, 자신은 힘 닫는데까지 평생의 직업인 운전을 성실히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래도 나이는 어쩔 수 없는지 최근 체력이 부쳐 휴일은 가급적 쉬어 가며 한 달에 보름 가량 즐기며 일을 합니다. 운전 틈틈이 한문 공부에 공을 들여 까다로운 글자도 척척 해석을 해 내고 트로트 음악에 일가견이 있어 이..

나의 이야기 2020.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