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35

오륙도ㅡ이기대(부산 갈맷길)

오륙도ㅡ이기대(부산 갈맷길) 시 얘기 모임 후, 파전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는데 나하고 두물머리를 걸으며 담소를 나눈 적이 있는 분이 "이즘도 많이 걸으세요? 좋은데 좀 알려 주세요" 하셔서 말씀 드린 코스, 한 칠팔 년 지났을까, 걷기 20년 지기 벗들과 걸었던 부산 갈맷길 '오륙도ㅡ이기대'를 걸어 보시라 말씀드렸다. 6.5km의 안전하게 조성된 해안절벽 길을 따라 광안대교와 해운대, 달맞이고개를 저만치 보며 걷는 환상적인 트레킹 코스, 때론 가파른 절벽 계단을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넘실대는 파도에 아찔한 스릴을 느끼기도 하지만 오르막길 내리막길 내내 절벽 중간 중간에 자리한 쉼터는 농바위 같은 기기묘묘한 해안 절벽의 형상을 감상할 틈을 친절하게 내주고는 낭떠러지 절벽 사이사이에 서식하는 갈매기들 둥지를..

나의 이야기 2022.09.22

기억 저편의 인도

기억 저편의 인도 ㅡ 업무 상 비교적 여러 나라를 다녀보았지만, 변하지 않는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인구 13억의 인도다. 마지막 월급쟁이 노릇 후 2000년부터 인도에서 Psyllium Husk, Guar Gum을 수입했다. 농산물로 각각 소화기관 보조제로 濃化劑로 사용되지만 보관이나 수입 과정에서 변질되기 쉬워 클레임(하자)이 잦은 생산품이라 사전 검수(inspection)가 필수다. 아무튼 이런 문제로 인도 북부 도시 조드프르(라자스탄州)에서 생산지 비카너 북부 지역까지는 편도 5시간이 넘는 여정이라 호텔 새벽 출발로 시작됐다. 계기판이 하나도 없고 사이드 미러조차 없어 굴러다니는 게 신기할 정도의 자동차에 운전기사 포함 4인(한국인 2인 인도인 2인)이 타고 가는데, 과연 이런 자동차로 왕복 10시..

나의 이야기 2022.09.19

수정방

수정방 ㅡ 좋아하는 중국 술 몇 가지가 있는데 최근에는 벗을 잘 두어 그 중 수정방을 마십니다. 酒逢知己千杯少(주봉지기천배소) 好友相逢募言醉(호우상봉모언취) ㅡ술은 나를 좋아하는 벗을 만나면 천 잔이 부족하고 좋은 벗을 만나 술잔 기울이면 말이 필요 없다 ㅡ 조금 유식한 중국인들과 술자리를 하면(한중합자회사를 운영해 본 사람으로서) 유식 떠는 대표적인 말이지만 박산은 이리 말하고 싶습니다, '好酒值得和好朋友好好谈谈 좋은 술에는 좋은 벗과 좋은 대화를 해야 그 가치가 있다'고. 일찌기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란 두 신체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라 했습니다. 그 영혼을 좋은 술로 촉촉히 적시면 금상첨화요 만사형통이겠지요. 좋아하는 술 '水井坊(수이징팡)', 그 비싸고 귀한 술을 마련해 자리 해 주는 좋은 벗들과..

나의 이야기 2022.07.03

불결한 김치찌개집

불결한 김치찌개집 ㅡ 사무실 인근 김치찌개집은 점심 시간에 번호표를 받아야 할 정도로 손님이 많다. 듬성듬성 썬 돼지고기를 듬뿍 넣고 끓여낸 찌개가 일단 푸짐해서 젊은 직장인들 점심 한 끼 배 불리 먹기에는 손색이 없다. 오육 년 전에 몇 번 갔었지만 정나미 떨어지는 일이 있어 발길을 끊었었는데 최근 식당을 옮겼다고 우리 회사 윤 사장이 가자 해서 오랜만에 갔다. 숟가락질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정나미가 떨어지는 건 여전했다. 먹으러 가자 한 윤 사장 민망할까 억지로 꾸겨 넣은 찌개는 체할 것 같았다. 구글에서 이 김치찌개집 어떠했나, 별표로 물어와 다음과 같이 답변을 달았다; ☆ 절대로 가면 안 되는 불결한 식당 손 입 코 닦고 땀 닦은 손님 물수건으로 먹고 난 후 테이블을 겉보기 아주 깨끗하게 어찌나 ..

나의 이야기 2022.06.02

빵돌이

빵돌이 ㅡ 당ㆍ콜레스테롤ㆍ혈압 등 종합병원인 사람이 제 분수를 모르고 아직도 냉면 해물칼국수 막국수 같은 면類를 좋아하는 것도 모자라 쌀로 만든 막걸리에, 크로와상 소보로 케이크...온갖 빵을 마다하지 않는다. 프랑스인들이 독일로 들어오면 다크 브레드를 사재기해 가고 독일인들이 프랑스로 놀러 가면 바게트를 사재기해 온다. 프랑스 독일인들이 유럽 다른 나라 여행에 빵을 들고 가면 허그로 달려와 환영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독일인도 프랑스인도 아닌 나의 아침은 호박죽이나 마일드한 커피에 부드러운 식빵이나 마늘 바케트 한 쪽이다. 사무실에 혼자 있을 때는 종종 옥수수차에 편의점 단팥빵으로 때우고 여행 시에는 인근 장터에서 떡이나 김이 솔솔 나는 술빵을 사서 배낭에 넣어 다니며 뜯어먹는 자유를 만끽한다. 밀가..

나의 이야기 2022.03.16

낙지집

낙지집 ㅡ 젊은 시절부터 즐겨 먹던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힐 정도의 매콤한 낙지볶음을 여전히 좋아한다. 서울 낙지볶음의 탄생지 무교동하고는 원래 친했다. 염세주의에 빠져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던 학교가 지척이고 본격적으로 술을 마셨던 직장 동네였다. 이러니 지금은 거의 사라진 옛 낙지집들 생각만으로도 다동 무교동 청계천 수송동에 이르는 오밀조밀 그 골목골목 집들이 떠올라 정겹다. 냉면 대접에 막걸리를 가득 부어 호기를 부리던 시절에, 겁대가리 없이 딱 한 번 유치한 치기로 소주를 세 병 부어 원샷 하려다 목구멍에 사레들려 죽을 뻔한 기억도 있다. 초가집 실비집 이강순낙지 등등에 그 유명한 유정낙지집은 현재 조선일보사 뒤로 이전했는데 현대화된 테이블도 변질된 매운 맛도 마음에 안 든다. 예전 낙지집들은 실내에..

나의 이야기 2022.02.25

파이어 족

파이어 족ㅡ 잿빛 과거는 가급적 멀리하는 게 좋다. 나이 듦에 자꾸 들춰내어 회상하는 일들이 그렇다. 카르페 디엠! 둘보다 작은 하나여도 괜찮다. 그래도 인간인지라 종종 가정법 과거완료를 자신에 대입해 보면 가장 아쉬운 건 여의도 비행장 근처 노들나루 동네에서 비행기 이착륙을 보고 자란 때문인지 자유 여행을 향한 갈증이 크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 시대적 한계가 있었음을 몸뚱이 하나 비벼 산 세월로 잘 알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지금 존재하는 우리 후손 파이어 족들이 한없이 부러운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부언하면 파이어(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은 경제적으로 자립해 조기에 직장 은퇴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로, 젊었을 때 ..

나의 이야기 2022.02.09

일흔 향해 가는 길목에 -

'mémoire bleue' 김명옥 화가 일흔 향해 가는 길목에 - 월요일 아침 출근을 해 보니, 윤 사장은 포항에 급한 납품 건이 발생해 내려가는 중이라 해서, 홀로 하꼬방 회사 썰렁한 사무실에서 업무 메일을 켜는데 비밀번호가 생각이 안 납니다. 편리상 로그인 상태를 유지하다가 아마도 지난주 로그아웃을 했었나 봅니다(사실 이 기억도 없습니다). 문제는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완벽히 비밀번호가 생각이 안 난다는 ‘현실’에 살짝 절망을 합니다. 겨우겨우 알아내 독일 업무 메일 답변 하나를 마쳤는데, 자주 소통하는 벗 J의 ‘시간 되면 전화 요망’ 톡이 뜹니다. J는 작은 우체국을 지하철역 근방에서 늘그막에 운영하는데, 지난주 수하물을 우체국 차에 실으려다 카트에 실린 수하물 한 무더기가 떨어지면서 머리를..

나의 이야기 2021.11.15

Ignorance of Wine

Ignorance of Wine ㅡ 1992년 독일 출장을 처음 갔다. 관광지로 유명한 로텐부르크 인근 쿤젤자우라는 작은 동네에 공장과 회사가 있었는데, 이 회사에서는 나를 위한 저녁 만찬으로 중세 Castle의 일부 건물을 개조한 천정이 높은 고풍스런 식당으로 안내했다. 동남아를 주로 다녔던 세일즈맨이 유럽 식사 문화를 처음 접하는 순간 처음 만난 게 와인 문화였다. 당시만 해도 와인이란 말 대신에, 어린 시절 집 뒤뜰에 포도 넝쿨이 있어 병에 포도를 넣어두면 자연 발효가 된 포도주란 단어가 친숙할 때다. 턱수염이 멋진 나비넥타이 차림의 웨이터가, 열 명 정도가 앉아 있는 테이블 호스트 앞에 와인을 들고 오는 걸로 시작하는데, 린넨에 싸인 와인 병의 라벨을 호스트에게 보여주며 주문하신 와인이 맞는지 확..

나의 이야기 2021.09.02

Who am I ?

ㅡ 'Woman Player After Olympic Games' 이광무 화백 ㅡ 《인사島 무크지 진흠모 이야기 7 중, 2021》 [ Who am I? ] 막걸리 자리에서 “마셔! 마셔! 사는 게 뭐 있나 도사 흉내나 이렇게 내며 한평생 이리 살다 가는 거지”하며 유행가 가사처럼 쉽게 읊조리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볼수록 '사는 게 뭔지….?'는 인생 거대 담론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것도 예순 넘은 지 오랜 법적 장년에게는 말입니다. 과연 나는 뭐 하고 살았고 뭣을 건졌고 뭣이 남았나. Who am I? 어머니의 바다에 아버지가 쏜 화살 요행僥倖한 파문波紋의 꼴이 찌질이 세일즈맨 실패한 장사꾼 삼류 시인 도대체 나는 누굽니까 보잘것없는 나의 과거 완료형에 'Who am I?'라는 짧은 시로 자신에게 진지하..

나의 이야기 2021.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