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34

개 폼

사진: 서산 간월암에서 「개 폼」 ㅡ 시쳇말로 '가오다시', 뭐 말 한 마디 하려면 어깨에 뻥이 잔뜩 들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창 젊은 때는 빈정이 상해 마주하기도 싫었지만 늙어 가면서는 우선 딱하고 보기에도 이 사람 왜 저러지 하고 측은해 보일 뿐입니다. 오래 알고 지내는 A가 그렇습니다.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재산이 있어 누군가에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사니 어찌보면 늘그막 늘어진 팔자 임에도, 얘기 중에는 습관적으로 대화 상대인 나와 아무 상관 없는 예전 잘 나갔다는 뭐뭐하는 동창 얘기에 친분 있다는 정치인 이름을 자주 들먹입니다. 그저 변방에 쪼그려 앉아 잡문이나 끌쩍이고 있는 내 짐작으로는 문학이야 그에게 어려울 거니 그저 여행이나 막걸리 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헤어지면서 다음 만남을 진지하..

나의 이야기 2020.12.24

전관예우

「전관예우」 ㅡ 국장하고 나온 친구에게 석 국장! 차관하고 나온 친구에게 김 차관! 교장하고 나온 친구에게 정 교장! 대령하고 나온 친구 섭섭할까 윤 장군! 지점장하고.... 상무하고.... 전무하고.... 사장하고.... 이리 불려지다 나왔으니 혹여 그게 그리울까 내 딴에는 존중 의미 더해 가급적 이리 불렀다 별을 세 개나 달았었다는 아흔이 다 되 가시는, 수수해 보이는 입성에 거들먹거림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안 보이는 A 장군을 뵙고 여러 좋은 말씀을 들었는데, 단호하고 다부지게 귀에 쏙 드는 그 분의 세상 '觀' 중 하나를 기억한다. 자신이 몸 담았던 군대의 例를 들어, 전역했음에도 상호 호칭이 장군! 사단장! 사령관! 총장!, 특히 동기생 간의 이 거북스런 호칭부터 하지 말아야 쓸 때없는 권위가 사라..

나의 이야기 2020.12.07

무화과

「무화과」 누가 내게 가장 맛있게 먹은 과일을 고르라면, 단연 2018년 압해도 과수원에서 먹은 무화과라 말할 것이다. 아삭하게 씹히는 씨앗 덩이에 끈끈한 당액이 골고루 버무려져서 껍질의 부드러움과 함께 입에 스며들면서 혀를 감아 부드러움을 더한 목 넘김이 황홀했다. '왜 이렇게 맛있는 우리 과일을 그동안 못 먹었지' 란 생각이 들었다. 캄보디아 여행 중에 맛보았던 망고스틴, 자줏빛 껍질을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 껍질을 벗겨 향긋한 흰 과육을 꺼내 입에 넣으면 달콤함이 순간적으로 혀를 점령시키는 첫 키스 같은 맛, 이 맛 역시 얼마나 반복하고픈 욕망을 부르는 혀의 중독성이 있었던지, 씨엠립 시장에서 한 봉지 욕심껏 가득 채워 산 망고스틴을 호텔 방에서 입에 단내가 날 때까지 정신없이 먹을 정도로 잊을 수 ..

나의 이야기 2020.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