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참을성 없는 어른

박산 2021. 7. 23. 16:44

 

참을성 없는 어른 -

예전 60년대 초 우두라 부르는 천연두 백신 주사를 맞았다. 우리 세대는 아프기로 소문난 이 주사 흔적을 어깨 근방 팔에 평생을 지니고 산다. 가난했던 이 시절 의료 물자 역시 부족했던 시절 알코올램프로 소독을 해서 사용을 하니 ‘불주사’라고도 했으니, 열 살 남짓의 어린 초등학생들이 이 주사를 맞는 날 교실은 공포의 울음바다가 되었지만 울지 않는 아이 몇은 칠판 앞으로 나와 선생님으로부터 훌륭한 아이로 참을성을 칭찬받았다. 나 역시 영특한 머리보다는 고집 세고 우직한 편이다 보니 참을성이라도 내세워 선생님께 칭찬받으려 참았던 훌륭한 아이였다. 한번은 전봇대 줄을 타고 오르다 떨어져 개천에 박혔는데 무릎뼈가 드러날 정도로 찢어져서 피가 낭자하게 흘렀다. 어머니께 혼날까 집에 들어와 몰래 빨간약으로 소독을 하고 붕대를 감고 퉁퉁 부어 욱신거리는 무릎을 몇 날 며칠을 숨겼다. 이 상처는 아직도 흔적으로 남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미련한 일이었다. 아무튼 나는 어린 시절부터 참는 데는 이골이 나 있었던 셈이다. 이즘 세대는 먹고 싶으면 먹어야 하고 입고 싶으면 입어야 하고 타고 싶으면 타야 하고 가고 싶은 데는 가야 하고 달러빚을 내서라도 살고 싶은 집에서는 살아야 한다.

팬데믹으로 시간이 많아진 이즘 예전 60/70년대 출판되었던 세로로 인쇄된 글을 다시 읽는 중인데 눈에 피로도가 너무 크다. 노안이 온 이유가 우선이겠지만 종이 재질의 발달과 커진 활자로 보다 더 쉽게 읽히는 지금의 가로 인쇄에 익숙해져서 이 오래된 서적을 장시간 읽으려면 끊임없이 참을성이 요구된다. 당시로서는 익숙하게 읽었던 서식임에도 새삼 그러하다.

모든 게 더 편리해지고 더 가벼워진 작금에는 인내할 시간조차 없다. 영어 단어 하나를 찾으려면 콘사이스의 얇은 습자지 페이지를 넘겨 깨알 같은 단어를 찾아야 했지만 지금은 단 한 번의 클릭으로 찾을 수 있다. 이렇듯 모든 면에서 IT와 AI는 참을성을 고사시키고 있다. 신문에 보도되는 통계에 의하면 사랑도 참을성이 없어져서 결혼 3년 안에 36%가 이혼을 한다 하고, 돈 많이 벌고 화려하게만 보이는 인기 연예인들이 걸핏하면 자신의 생명을 버린다.

이런 시국에 함축된 언어로 인생을 진지하게 표현하는 짧은 詩라도 젊은이들이 많이 읽고 생각한다면 사는 문제에 더 진중해지련만 시는 죽어라고 안 읽는다.

하긴 올 쉰일곱 살 먹은 煐棲 아우조차 A4 용지 1/4 분량도 안 되는 나의 산문을 읽으며

“형 글 좀 짧게 써요, 읽다가 전체보기가 나와 길게 읽기가 힘들어요!” 한다.

그 나이에 하는 말이 어처구니가 없긴 했지만 그냥 웃고 말았다.

그럼에도 내친김에 쉰일곱 영서 아우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이고 곧 예순 줄에 들어서는 아우 영서야!

사업을 하고 세상을 살아 온 사람이

이 짧은 글도 읽을 참을성이 없다면

어린아이도 아니고

심도 있는 사업은 어찌하고

무슨 생각으로 이 험한 세상 헤쳐나갈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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