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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仁寺洞

시집 「노량진 극장 중, 2008 우리글」 인사동仁寺洞 말言이야 조선 시대를 팔아먹고 살지만 조선 시대 그림자는 죽은 지 이미 오래다 시인 묵객들이 아직은 기웃하지만 육천 원 하는 차 한 잔이 버겁다 거죽만 흉내 낸 옛날이야기가 한글 간판 속 가득한 듯 하지만 알고 보면 다 버터 칠해진 냄새라 맡기 역겹다 기와집 골목길 몇 개가 엉켜있는 사이사이 연기 없는 옛날 굴뚝은 화난 듯 봐 달라 기대어 서 있지만 누구 하나 아는 척 하는 이 없다 커피 집, 와인하우스, 24시 편의점, 옷가게 그리고 먹는 집 + 또 마시는 집 자정을 넘긴 네온사인 꺼진 이른 새벽 거리 가로등도 죽은 골목 사람 흉내 낸 어둠도 술 취한 척 질척거린다 이 때다 싶은 영혼 서린 소설가는 어둠 속 거리에 무릎 꿇어 글을 쓰고 소음이 싫었..

2021.11.25

폼 그만 잡고 자주 보세!

폼 그만 잡고 자주 보세! ㅡ 팔팔하던 때야 만사에 따질 일이 많았지만 늘그막 지금에야 무어 그리 잴 일 있겠는가 시간 나면 얼굴 보고 목이 컬컬하면 적셔 주면 되지 어제 만나고 오늘 만나고 내일 또 만나면 안 되나? 말로만 제행무상이 아니라 오늘은 붉은 셔츠를 입고 내일은 흰 바지에 검은 점퍼를 모레는 파란 모자에 노란 머풀러를 두르고 싶네 서로 변모하는 모양을 보려면 자주 보는 게 우선이지 크게 바쁠 일도 없지 않은가 우주 만물에 티끌 하나인 이 벗이 뭔가 잔뜩 있는 양으로 생사에 인과를 꺼내 윤회를 이리 '썰' 하는 자체가 부처께는 미안할 일일세만 폼 그만 잡고 자주 보세!

2021.11.22

사람 나름

'船的心' 우꾸안쭝(吳冠中,1919~2010) 중국 항정우 미술학교 교수 역임 (이돈권 시인 소개) 시집 「인공지능이 지은 시」 중, 2021 황금알 사람 나름 - 여기저기 다니는 걸 좋아하지만 이 사람 저 사람 사귀는 건 좋아하진 않는다 물구나무서서 “지구를 들었다!” 큰소리치는 사람을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하하! 함께 웃어주지는 못한다 자주 만나는 오랜 친구라고 꼭 유유상종은 아니다 놀러 가기, 술 마시기 같은 하찮은 일에도 다투기 일보 직전까지 간 적도 많다 어쩔 수 없이 얼굴 닮은 형제지간에도 다 제 잘난 맛에 다르긴 마찬가지다 세상은 셋만 모이면 의기투합 친목회 만들어 회비를 걷고 형님 동생 부르다 슬쩍슬쩍 뒷담화로 씹는 재미로 사는 거다 나는 이런 것들이 싫은 병에 걸렸다 여름 장마 끝난 날 뭉..

2021.11.18

선글라스는 폼으로 끼는 게 아닙니다

선글라스는 폼으로 끼는 게 아닙니다 ㅡ 백 세 넘어 걸으며 사시는 김형석 교수도 계시고 아흔 넘어 여행 다니시는 이생진 시인도 계시지만 신체 부실 본격화 되는 예순 넘기며 나이 듦을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등짝을 두둘겨 보고 팔다리 고되게 운동 시집살이도 시키면서 부지불식이 주는 억지 낙관론 주창으로 자신에게 때론 비겁해질 때도 많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 보는 게 취미인지라 영화 속 배우들의 선글라스는 제임스 딘부터 작금의 톰 크루즈까지 너무 멋집니다 멋도 모르면서 언어의 순화라곤 1도 없는 Y는 제 딴엔 내가 이물 없는 친구라 그러는지 선글라스 낀 나를 볼 때마다 "곧 죽어도 개폼은!" "이눔아, 너도 나이 들어 봐라! 백내장에 안구건조증에...." 선글라스는 결코 폼으로 끼..

2021.11.11

좋은 사람들 끼리는

좋은 사람들 끼리는 ㅡ 말 한마디에도 정이 듬뿍 담겨 있고요 하찮은 우스갯소리에도 마냥 좋아 죽지요 밥 한 그릇씩 나누는 일도 숯불에 구운 고기 한 점 놓아 주는 일도 마주 보며 술잔을 맞부딪치는 일도 묵묵히 깜깜 바다를 구경하는 일도 하릴없이 호숫가를 배회하는 일도 시시한 詩를 낭송하는 일도 모다 좋은 사람들끼리는 여름 가고 가을 오듯 겨울 가고 봄 오듯 당연하게 올 기대에 부픈 좋은 사랑일 뿐입니다

2021.11.09

타향

타향 ㅡ 늦저녁 노을 진 바닷가 파도 소리를 듣습니다 붉은 물감 흩뿌린 하늘이 바다의 푸른빛을 제 색으로 물들일 때 괜스레 흐르는 나그네 넋 놓은 눈물은 철썩철썩 불규칙 리듬으로 붉어져 떨굽니다 아!... 사는 게 결국 이런 거로구나! 찾기 어려웠던 퍼즐을 어쩌다가 맞춘 듯 실체 없는 철학 같은 무형의 논리로 깨달음의 경지에 자위합니다 차츰 어둠으로 더 검어지는 바위에 걸터앉아 우 우 응 응 순간의 자작곡을 허밍하는데 가뭇없던 자동차 먼빛으로 지나는 소리에 문득 돌아온 현실감에 진저리칩니다 태어났다고 그곳이 내 땅이 아니 듯 이곳 역시 잠시 점유하는 내 땅일뿐입니다 배낭에 든 비닐봉지 속 바나나를 꺼내 껍질을 벗기고 단팥빵과 캔맥주도 꺼내 바위 한 편에 상을 차림니다 어느샌가 사라진 노을 따라 나그네 움..

2021.11.04

주책없이 오지랖만

주책없이 오지랖만 ㅡ 저녁 8시 지하철 내 바로 옆 손을 꼭 잡고 붙어 있는 젊은 남녀 속삭이는 얘기들이 굳이 주워 담으려는 것도 아닌데 귀에 쏙쏙 듭니다 하루를 주어진 운명대로 열심히 살았던 장삼이사들의 그렇고 그런 일상의 회사 얘기부터 점심으로 먹었던 파스타가 정말 맛있었다는 얘기에 이르렀을 즈음 툭 던지듯이 남자가 묻는 말 "그거 말씀 드렸어? " 결혼식 얘기입니다. 갑자기 이들의 대화에서 미소가 사라졌습니다 스쳐도 될 이들과의 인연이 조금 더 길었음인지 내가 내리는 역에 이들도 내리고 자연스레 나는 그들의 뒤를 따라 갑니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 버스정류장이 있는 사거리로 나가는 직전 길목에는 MOTEL 간판들이 덕지덕지 붙어서 깜빡이는 골목이 나옵니다 손목을 슬며시 잡아끄는 남자에게 "돈 아껴야지 ..

2021.11.01

철책에 서서

철책에 서서 ㅡ 철책 넘어 안개 자욱한 저기가 어딘가 물 빠진 갯벌은 한 많은 여인네 가슴처럼 움푹움푹 구멍이 파였다 나도 저런 적 있었는데.... 일사분란 떼 지어 나는 고니들은 1렬횡대 5열종대 7열횡대...群舞로 이 짙은 안개를 걷어 내는 중이다 바다 건너 동네 확성기 소리가 바람 타고 웅웅 날아 오는데 무거운 사람들이 무거운 귀를 기울인다 어느샌가 고개 내민 아침 햇살이 철책에 선 늘그막 사람들 어깨에 걸린 무거운 짐들을 하나둘 덜어 내고 있다 철책을 돌아서니 황금빛 들녘이었다 (교동도 2021년 10월 , 가을 추위가 일찍 찾아온 날 아침 씀)

2021.10.27

유튜브 in My Life

유튜브 in My Life ㅡ 이영훈 이승만TV 김지윤 김용삼 박종인 역사의 땅 고미숙 Tom Hillddleston Redfrost Motivation Poem Reading 여행족 두억시니 빠니 보틀 희철리즘 소이 곽튜브 Family Kim 인사동tv 아가사 크리스티 셜록 홈즈 MLB 김형준 송재우 Koln Opera 김영우 조수미 강지민..... Poetry Reading Poetry Therapy 유튜브에 풍덩 빠져있다 이런 얘기와 시와 소설과 낭송과 노래를 보고 듣는다 YouTube has already become a part of my life...이렇게

2021.10.25

타인의 방

시집 《 '무야의 푸른 샛별' 중, 2015 황금알 》 타인의 방 익숙했던 것들이 갑자기 타인의 방에 든 양 낯설었다 스마트폰은 회중시계 흉내를 내며 손아귀에서만 놀다 호주머니 속으로 들었다 존재의 공간은 시도 때도 없이 안개가 꼈다 상황 판단을 위한 계산은 아주 어려웠지만 수치상으론 모든 게 완벽하다 했다 그래도 달무리 따위의 현상에는 나름의 슬픔이 여전했고 작아진 기계들은 움직임을 숨겼다 아침과 저녁이 구분 지어진 하루가 새삼스러운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풀벌레도 꼭 풀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은퇴 하늘 구름 한 무더기 스멀스멀 입으로 들어와 애오라지 먹은 김밥 한 줄에 공간 많은 위장 꼭꼭 채우니 배꼽 주름 펴지며 움칠움칠 이때 작은 별 몇 개 음속音速으로 내려와 따개비처럼 얼굴에 다닥다닥 붙었다..

2021.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