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仁寺洞

박산 2021. 11. 25. 07:02

인사동을 지키는 生子 이생진 시인과 소리꾼 유재호님

시집 「노량진 극장 중, 2008 우리글」  

 

인사동仁寺洞

 

이야 조선 시대를 팔아먹고 살지만

조선 시대 그림자는 죽은 지 이미 오래다

 

시인 묵객들이 아직은 기웃하지만

육천 원 하는 차 한 잔이 버겁다

 

거죽만 흉내 낸 옛날이야기가

한글 간판 속 가득한 듯 하지만

알고 보면 다 버터 칠해진 냄새라 맡기 역겹다

 

기와집 골목길 몇 개가 엉켜있는 사이사이

연기 없는 옛날 굴뚝은

화난 듯 봐 달라 기대어 서 있지만

누구 하나 아는 척 하는 이 없다

 

커피 집, 와인하우스, 24시 편의점, 옷가게

그리고 먹는 집 + 또 마시는 집

자정을 넘긴 네온사인 꺼진 이른 새벽

거리 가로등도 죽은 골목

사람 흉내 낸 어둠도 술 취한 척 질척거린다

 

 

이 때다 싶은 영혼 서린 소설가는

어둠 속 거리에 무릎 꿇어 글을 쓰고

소음이 싫었던 시인은

더 이상 나올 것 없는 빈 소주병 빨며 펜을 찾는다

 

인사동이나 명동이나 다를 게 없다

단지 어둠에 취했을 때 정신 잃었던 보헤미안들이

인사동에서는 유독 정신을 차린다는 점이다

 

사라졌던 조선의 인사동 영혼이

스멀스멀 어둠을 틈타

제대로 쪽이라도 한 번 쓰려는 순간이다

 

인사동에 詩를 심고 있는 진흠모 동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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