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팔따라지 로맨티스트 이세복 아저씨

박산 2021. 11. 28. 09:31

'山寺初冬' 박산 찍음

 

삼팔따라지 로맨티스트 이세복 아저씨 ㅡ

 

어린 시절 우리집 살며

가족처럼 함께 살았던 아저씨네

어머니와 친구처럼 지냈던 아주머니 평양 사투리

피양에서는...고저...야래...이 애미나이 새끼...

아직도 그 목소리 귀에 선하고

학교 파하고 온 풍문여고 규율부 혜숙이 누나는

양푼에 열무김치 항아리에서 꺼내

고추장 얹어 참기름 한 방울 뿌려

썩썩 찬밥을 비벼 숟가락 하나 더 꽂아

이리 와 먹자!

둘이 아구아구 얼마나 퍼먹었던지.....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리던 깜깜한 밤

청계천 기계 기술자 일 마친 아저씨가

술을 거나하게 기분 좋게 드시고는

따끈따근한 호떡 한 봉지 사 들고

푹푹 쌓인 눈에 빠지며 귀가했는데

아뿔싸! 큰 소리 부부 싸움 끝에

죄 없는 호떡이 마당에 내동댕이처졌다

아침 일어나 화장실 가려

마루 댓돌 내려 큰 돌절구 옆을 지나는데

하얗게 눈 쌓인 마당에

여기저기 널려 있는 이게 웬 호떡!

졸지에 내 입은 샤베트 호떡으로 호강했다

아저씨 집에 있는 휴일에는

한 많은 대동강, 애수의 소야곡, 단장의 미아리 고개

띵디기딩딩 기타를 기막히게 잘 치셨다

음악 부재인 우리집 유일한 공연이었다

달랑 김치 안주로 소주를 마시며

유행가 흥얼대며 기타 치시는 아저씨께

나도 좀 가르쳐 주세요 했더니

말수 없으신 이 양반 슬며시 기타를 건네며

여남은 살 먹었던 내게

좀 더 커야 배우지 하셨다

전쟁 중인 무더운 나라 월남에 가서

파괴된 기계 고치는 기술자로 돈 벌어

면목동에 번듯한 양옥집을 지었다

자칭 삼팔따라지 로맨티스트의 소망인

먹고 사는 문제는 이렇게 해결됐다

아저씨도 아주머니도 누나도 다 소풍 떠났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 리 오 만 은....

아저씨가 튕기는 트로트 슬로우 기타 선율은

아직도 뇌리에 은은하고 애잔하게 남아 있는데

정작 작은 체구의 이세복 아저씨 모습은

삼류극장 흑백영화 찢긴 필름 속 배우처럼

보였다 사라졌다 그저 삼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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