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노량진 극장' 중, 2008년 우리글》
고사 -
우리 어매 지성으로 아궁이 장작불 지펴
김 폴폴 올라오는 떡시루
팥고물이 넘친 시루떡이 폭 익을라치면
흰 광목 둘둘 말아 손잡이 만들어 묶고는
딱딱한 북어 대가리 잡아 푹 찔러 단단히 매어놓고
“그 쪽 들어라” 나와 마주 번쩍 들어
마룻장 위 쌀뒤주 옆 떡시루 자리 잡아 앉혀놓고
터주귀신 삼신할매 온 집안귀신 모두 불러들여
손 비벼 손금 닳고 닳도록 빌고 또 빌다가
따라 논 막걸리 한 입 물고는 다시 푸푸 뱉어 고수레
옥양목 고운 긴 치마 한 손 부여잡고
허리춤에 끼어 부엌 문지방 넘어 들어 고수레
떡 한 줌 떼어 변소에 뿌리고
막걸리 사발째 부어가며 고수레
아부지 작은 서재 재떨이 놓인 앉은뱅이책상 앞에서도
성질 좀 죽이라고 고수레
관운장 칼 쓰듯이 번쩍거려
이리 쓱 저리 쓱 큼직하게 정사각형 떡 썰어놓고
옻나무 소반 딱 맞게 두 장씩 넣어
너는 장님네, 성용이네, 서낭당집, 칠성이네
얼른 갖다 주고
너는 감나무님, 숙희네, 건너 집, 임 씨네
얼른 갖다 주고
아랫집, 윗집 또 어디 줄 거 몇 집 더 잘라놓고서는
그제야 이마에 함치르르 땀 한 줌
겉절이김치 손으로 길게 찢어
떡 한 덩이 옹글게 말아 입에 쏙 넣고는
“올해 고사떡 잘 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