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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 3

무위 3 - 곧장 앞으로만 가라고 배워 살았는데 살다 보면 그게 어찌 그리 쉬운 일이던가 휘고 꺾이어 부러지기 일보 전에야 겨우 목숨 건진 게 몇 번이었나 하늘 계신 울 아부지도 그랬겠지 깔린 양탄자 밟고 사는 인생 몇 되나 목구멍 꿀꺽꿀꺽 타고 넘는 막걸리같이 들어가 타고 흐르고 내려가다 보면 오줌 되고 똥 되고 뭐…다 그러는 거지 이쪽 길도 저쪽 길도 살피다가 오던 길 뒤도 한 번 돌아보고 힘닿으면 닿는 길을 가야지 비가 오시려나 눈이 오시려나 어여 오시길! * 시집 《 '인공지능이 지은 시'》 중

2024.03.19

간월암 봄 서정

看月岩 봄 敍情 ㅡ 孟春 서산 아주 작은 섬 차고 세찬 바닷바람 圓通殿 감싸 도니 사철나무 팽나무도 부르르 떱니다 그럼에도 저만치 갯벌에서는 조개 캐는 부지런한 소란스럼으로 봄 마중 풍경화를 그리는 중입니다 방파제 길 정박 중인 고깃배 옆에는 그물 작살 등이 무질서로 쌓였지만 붉은 등대는 무심코 바다만 봅니다 다섯 번 왔는데 정작 달 구경은 못했습니다 이 동네 맛있다! 널리 소문난 굴밥은 까탈스런 봄 입맛이 외면하네요 看月岩春天的愛 ㅡ 孟春瑞山很小的島 海風寒冷而強勁風圍繞圓通殿 就連常綠樹和朴樹也在發芽 儘管如此, 在那片泥灘上 辛勤地挖蛤蜊 正在畫一幅迎接春天的風景 停泊在防波堤道路上的漁船旁邊 雖然網子、魚叉等雜亂地堆放著, 紅色燈塔只看海不思考 來過五次 實際上 看不見月亮 這個街區 很好! 著名的蠔飯是 春天的挑剔品味忽略了..

2024.03.15

해빙기

해빙기 - 검고 붉게 성긴 딱지가 완전히 아물지 않아 피 흘리던 통증의 기억 여전히 어제의 일이지만 새살이 차가운 얼음에서 살아있었다는 사실이 고맙다 찢어지고 터졌던 원인을 지금 다시 분석한다는 건 대차대조표의 차변과 대변 같은 비즈니스적인 것 구름 일고 바람 불고 눈비 내리시는 일에 겨우 티끌 하나 죽도록 미워하고 울다가도 다시 다가온 사랑 한 방울 꽁꽁 얼었던 빙하의 바다 향한 눈물 같은 거 녹아 툭툭 떨어지는 처마 끝의 고드름 같은 거 그럼 됐다 * 시집 「인공지능이 지은 시 」 중

2024.02.29

서울특별시 부천구 사람들

서울특별시 부천구 사람들 - 환갑 지난 우리 회사 윤 사장은 대대로 부천 살아 온 토박이다 행정구역만 경기도에 속했지 구로구 강서구에 들쑥날쑥 붙은 인구 80만 서울특별시 부천구나 진배없다 토박이는 아니지만 나도 부천 시민이다 토박이들은 아직도 동네 체육대회를 꼬박꼬박 열고 끼리끼리 뭉쳐 여행 다니면서 선배 어른 공경하는 모습들을 보면 풍금 소리 들리는 시골 읍내 학교 앞 풍경을 보는 듯하다 그중 가장 부러운 건 우리 윤 사장 벗들이다 그중 나도 의형제로 절친이 된 긍X 그리고 승x다 주말이면 함께 텃밭을 가꾸고 자전거를 타고, 뒷동산을 오르고 방금 집에서 저녁 먹었어도 뭉치고 일하다가도 수시로 소통하며 만난다 잘 사는 긍X도, 어렵게 구멍가게 꾸려 나가는 승X도 윤 사장도 한결같이 흰 머리카락에 배 불..

2024.02.24

인사동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68'

【인사동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68'】 * 1시간 당겨 6시 시작합니다. 2024년 2월 23일 6시(매달 마지막 금요일) 종로구인사동길52번지 인사14길 詩/歌/演(02)7206264 쥔장:김영희 01028203090/ 이춘우01077731579 1호선종각역→안국동방향700m 3호선안국역→종로방향400m 268 낭송 예정자: 김지현(미희) 김효수 류재호 김중열 윤효순 조철암 이원옥 한옥례 김화연 김경영 박산 이생진 「신에게 기도드려요」 : 김효수 새해의 첫 밤 잠자리에 앞서 손을 모으고 간절하게 기도드려요 세계 곳곳 일어나지 말아야 할 전쟁이 아주 처참하게 벌어지고 멀쩡한 땅 쩍쩍 갈라진 지진에 높은 산봉우리 힘없이 무너지는 위험한 이 세상에 아무 일 없이 이제껏 지켜주셔서 감사드려요 지나간 해보다 ..

2024.02.17

노량진 극장

노량진 극장 1 - 1963년 허구한 날 빨간 줄무늬 난닝구셔츠만 입고 다녀서 내 친구 유신이는 별명이 '빨간 난닝구'이고 머리통이 약간 기울어진 경구는 그냥 '짱구'라고 불렀다 화창한 어느 날 노량진역 앞에 극장이 지어졌다 양철 슬래브가 기왓장 보다 더 미끈하게 한옥 지붕 선을 본떠 올렸는데 그 선이 볼수록 크고 멋 있었다 개업 축하 만국기가 빨래줄 같은 긴 줄에 걸려 나풀거리는데 아는 국기라고는 태극기 성조기 일장기 뿐 이었다 샛강 하나 사이에 둔 여의도 비행장에서는 수시로 비행기가 뜨는데 빨간 난닝구는 '노량진 극장 개관 축하 비행' 때문이라고 바락바락 우겨 그럼 내중 뜨던 비행기는 무엇을 경축하려고 떴느냐 핏대 높여 싸웠다 울긋불긋 그려 붙여놓은 극장 간판에는 한문으로 '成春香'이라고 쓰여 있지만..

2024.02.12

불목하니

불목하니 - 태어나길 머슴 팔자인 줄 모르고 고운 입성에 에헴 몇 번 했던 게 무슨 큰일이었다고 누군가 도끼질로 힘들게 패서 때 주는 장작불에 콧노래로 군불이나 쬐고 누군가 가마솥 쌀 일어 정성으로 지은 밥을 제 입 잘나 먹는 줄만 알고는 누군가에게는 더럽다 치워라 비질을 당연시 명령하고 살다가 알량하게 가진 밑천 여기저기로 다 새나가고 몽땅 털려서는 속내 발랑 까발려져 결국 덜렁 불알 두 쪽 남았는데도 못 살겠다 늘어놓는 신세타령에 앓는 곡소리 웃기는 소리 마라 남들 비웃는 소리가 귀로 들어 머리를 찧는다 뒤늦게 찾아온 머슴의 회한 늦었지만 어쩌겠나! 그나마 깨달았으니 다행이지 못난 자신 위한 속죄의 절집 하나 가슴에 지어 도끼질도 해야지 밥도 지어야지 비질도 해야지 비나이다 비나이다 불목하니 되어야지..

2024.02.06

무위無爲

무위無爲 Ⅰ - 상자 안 등불 하나 켜 놓고 하나둘 셋 주어진 숫자로 하루 세 번 저린 발을 뻗고 딱 세 끼를 챙겨 먹으며 누군가의 이론을 신앙으로 품고 살다 갑자기 찾아온 태풍 같은 무지막지한 그런 것들에 부서진 상자 밖으로 튕겨 나왔다 어둠에 물체들이 손에 잡혔지만 처음엔 온통 두려움뿐이었고 빛을 찾는 이유가 막연했다 굳이 말하자면 무엇엔가의 의존이었다 시간이 물어다 준 여유가 무력한 한숨을 꾸짖기 시작했다 손과 발을 자꾸 움직였고 배가 고플 때마다 먹었다 이전에 경험 못 했던 이를테면 원초적 생명 같은 것들이 심장을 평안케 움직였고 독립된 사고가 상상력을 확대하니 창조 의지가 몰려 왔고 자유와 자율의 사전적 의미의 경계 따위는 무너졌다 이론이다 이념이다 신념이다 다 깨지고 사라졌다 내 편한 내 세상..

2024.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