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목하니

박산 2024. 2. 6. 09:59

거문오름에서 (박산 찍음)

 

 

불목하니 -

 

태어나길 머슴 팔자인 줄 모르고

고운 입성에 에헴 몇 번 했던 게 무슨 큰일이었다고

누군가 도끼질로 힘들게 패서 때 주는 장작불에 콧노래로 군불이나 쬐고

누군가 가마솥 쌀 일어 정성으로 지은 밥을 제 입 잘나 먹는 줄만 알고는

누군가에게는 더럽다 치워라 비질을 당연시 명령하고 살다가

알량하게 가진 밑천 여기저기로 다 새나가고 몽땅 털려서는

속내 발랑 까발려져 결국 덜렁 불알 두 쪽 남았는데도

못 살겠다 늘어놓는 신세타령에 앓는 곡소리

웃기는 소리 마라 남들 비웃는 소리가 귀로 들어 머리를 찧는다

뒤늦게 찾아온 머슴의 회한

늦었지만 어쩌겠나! 그나마 깨달았으니 다행이지

못난 자신 위한 속죄의 절집 하나 가슴에 지어

도끼질도 해야지 밥도 지어야지 비질도 해야지

비나이다 비나이다 불목하니 되어야지  

 

 

* 시집 《'인공지능이 지은 시' (2020)》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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