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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 내 말 맞지요 ?

아부지 내 말 맞지요? ㅡ 부모 복이라곤 땡전 한 푼 받아 본 적 없는 생전 울 아부지 말쌈이 맞대거리 송사 걸리는 일 하지 말고 남에 돈 빚 지고 살지 마라 깜냥도 안 되는 눔이 사업이랍시고 벌였을 때 치성 들여 델꼬 있던 친구란 눔이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하루아침에 온다간다 없이 도망갔지만 아부지 말씀 받자와 고발하지 않았고 껌딱지 같이 스무 해 가까이 찰거머리처럼 딱 붙어 따박따박 이자 따 먹던 억억 거리던 마이너스통장 이 놈들도 이젠 얼추 떨궈 내니 앓던 이 뺀 거 같이 시원하고 쟁여 놓은 돈 없어도 누군가 돈 내 놓아라 할 일 없으니 배짱은 편타 자식 용돈 단 한 번을 안 받아 쓰시고 자식이 문안 인사드리면 밥값은 벌고 다니냐 걱정으로 묻고는 당신 벌어 쓰시다 당신 돈으로 소풍 떠난 아부지 당연 ..

2022.01.18

알고리즘에 쪽팔렸다

알고리즘에 쪽팔렸다 ㅡ 최근 안 다니던 삼성동 L호텔에서 스테이크를 썰었고 여의도 등심 한우집을 갔었고 엊그제는 서교동 G호텔 스시를 먹었다 허구헌날 종로 뒷골목이나 사는 동네 근방 허름한 식당 찾아 룰룰랄라 막걸리나 마시며 다녔는데 알고리즘이 놀랐나 보다 그 호텔 어떠냐고 그 식당 어떠냐고 자꾸 묻고는 별점을 매기란다 아이고 이노무 알고리즘 이 시키가 정말! 촌놈 서울 음식 구경 훈련 시키려나 보다 나 서울 토박인 줄... 고건 몰랐지 이 눔아 끄응 하고 야단치듯 중얼거리길 알고리즘, 너 이 시키 요것도 모르지 한때는 짜샤 나도 거기 일수 찍던 눔이야! 더 이상 쪽 팔리게 하지 마 짜샤, 알써!

2022.01.13

기다림

기다림 ㅡ 간절하게 쥔 손은 곱아 무뎌지고 오랜 휴식이 낯선 발바닥은 지루합니다 낙엽 떨구고 눈비 오시고 꽃은 피고지고 만물은 하던 일을 그대로 합니다 사람만 빼고는 다 그대로입니다 희망을 앞세워 구원을 외치던 초자연의 절대자들은 지금 어디에 계신지요 학문의 깊이는 갈팡질팡 신뢰를 잃고 말만 앞선 학자들은 부정확한 통계로 두 해 넘어 처절하게 유린당하는 중입니다 인간의 참을성은 그러함에도 순간의 망각으로 자위되고 마스크 따위의 가면이 밥먹듯 익숙해졌고 돌파감염이 중구난방 믿지 못할 백신임에도 군말 없이 부스터 샷을 맞습니다 3차 4차 5차... 끝을 궁금해 하는 지구인들의 기다림은 지쳤지만 구름 건축이 활달한 하늘은 더 푸르러졌고 별빛을 쏘아 대는 은하수 경기장은 더 빼곡해졌습니다 어린왕자가 슬며시 나타..

2022.01.10

다시 평지平地에 이르러

시집 《 '노량진 극장' 중 2008, 우리글》 다시 평지平地에 이르러 다시 평지에 이르러 다시 평지에 이르러 다 잊어버렸습니다 기억나는 건 붉은 색 망토 입고 하늘을 날던 기쁨과 그 기쁨 배가하려 청록계곡 어딘가에 머물며 가쁜 숨 몰아쉬었던 어설픈 욕망의 시련 뿐 이제까지 온 감사함에 대한 예의도 날 수 있었던 건강함도 저 만치 보이는 ‘조금만 더’ 의 과욕 만을 따랐을 뿐 계곡 맑은 물 속 양손 집어넣고 느낀 청량함은 그 때뿐이고 구름 속 날개 부딪히는 신선함을 그저 당연시 한 나는 받고 먹을 줄만 아는 에고이스트 그 한계는 그 때 뿐 이어야지요 산맥이 기지개를 켜고 그를 재운 산하는 아직 여전한데 나는 내려앉아 숨을 고르고 자아는 춤을 추며 또 다시 날아오를 생각에 상념의 평화를 채우고 있습니다 가..

2022.01.01

사랑하는 당신 아프지 마세요

사랑하는 당신 아프지 마세요 ㅡ 언제부턴가 병원 한두 군데 다니는 게 일상입니다 건강 최고라 믿었던 당신도 그러합니다 무더위 꺾여 찾아온 시린 계절에 당신 아프다는 말들이 절절이 내게 스며듭니다 사는 게 어찌 꽃 피는 봄날만 있으리오만 나도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이 하루에도 백 번 넘게 순응해야지 순응해야지 다짐하면서 그 징표의 실현으로 습관처럼 약을 입에 털어 넣습니다 신앙도 없는 사람이 보신적 갈구의 심정으로 스스로 구도자가 되어 가는 중입니다 그래도 이 말 만큼은 사랑하는 당신께 꼭 드리고 싶습니다 아프지 마세요 우리가 숨 쉬는 날까지 난 오늘 독감 예방접종 갑니다

2021.12.21

혼술 소묘

혼술 소묘 ㅡ 종종 단골 해장국집 가는 시간은 일부러 손님 뜸한 아침 11시 전후다 대다수가 나 같은 혼밥이라 편하다 한 쉰 먹었을 얼룩얼룩한 작업복 차림의 사내가 세상 고민 혼자 다 뒤집어 쓴 표정으로 터덜터덜 들어와 앞 테이블 의자에 털썩 앉자마자 "아줌마, 후레쉬 한 병에 내장탕!" 김치 깍두기가 밑반찬으로 놓이기 무섭게 물컵에 콸콸 소주를 따라 바로 목을 넘긴다 한눈에 보아도 세상에 목이 바짝 마른 생명이다 정작 내장탕은 나오기도 전에 이미 소주병은 싹 비워졌다 또 한 병의 소주병 목을 거칠게 비튼다 아침, 해장국집, 혼술, 혼밥, 두꺼비 문득 지금 이 장면이 아련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1986년 겨울 아침 청진동 해장국집에서 내가 그랬으니까... (2021년 겨울 아침)

2021.12.19

타훼打毁(때려 부숨)

그림: 게리 번트(Gary Bunt, 1957~) 영국 켄트주 출신 화가, 시인. 음악 밴드 기타리스트, 건설현장 노동자 등 다양한 직업 전전. 마약과 알코올 중독 등을 겪었다. 자기치료와 성찰의 ‘사색적 여정’을 그림으로 그린다 (from 진흠모 이돈권 시인). 시집 《'노량진 극장' 중' 우리글 2008》 타훼打毁(때려 부숨) - 순간의 분열이 가져온 파편은 이미 우주에 흩어졌다 눈치 없는 굼뜬 인간 몇몇이 때 늦은 회한에 손을 모아 다시 주우려 허우적거리지만 저 만치서 보고 있는 나는 팔짱 낀 채로 비웃고 있다 늦은 밤과 이른 새벽조차도 그들은 불만이다 밤이 늦어지는 건 낮에 불었던 바람 때문이라는 핑계지만 “흑심을 품고 미리 힘을 뺀 바로 네 잘못” 일 뿐이고 이른 새벽이 오는 까닭은 “너희가 일..

2021.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