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게리 번트(Gary Bunt, 1957~)
영국 켄트주 출신 화가, 시인. 음악 밴드 기타리스트, 건설현장 노동자 등 다양한 직업 전전. 마약과 알코올 중독 등을 겪었다.
자기치료와 성찰의 ‘사색적 여정’을 그림으로 그린다 (from 진흠모 이돈권 시인).
시집 《'노량진 극장' 중' 우리글 2008》
타훼打毁(때려 부숨) -
순간의 분열이 가져온 파편은 이미 우주에 흩어졌다
눈치 없는 굼뜬 인간 몇몇이
때 늦은 회한에 손을 모아 다시 주우려 허우적거리지만
저 만치서 보고 있는 나는 팔짱 낀 채로 비웃고 있다
늦은 밤과 이른 새벽조차도 그들은 불만이다
밤이 늦어지는 건
낮에 불었던 바람 때문이라는 핑계지만
“흑심을 품고 미리 힘을 뺀 바로 네 잘못” 일 뿐이고
이른 새벽이 오는 까닭은
“너희가 일방 저지른 <타훼>로 인한 어둠에 스민 슬픔으로부터의
성급한 탈출일 뿐이다” 라고 말했다
때는 이미 늦었다
볕이 아무리 좋아도 이미 꺾인 꽃대는
모자란 수분에 신음을 토吐하고
피어보지도 못한 채 떨어져 나뒹구는
조각난 꽃잎에 붙어있던 영혼들은
그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또
“내 그럴 줄 알았다”고 했다
앞뒤 가리지 않고 파괴된 무질서는
세월이라는 풍상風霜의 아픔에
이미 기력을 잃었다
그래도 타훼에 용케 살아있는 생명에 든 욕망은
이제 더 잃을 것 없는 평지에 뿌려줄
비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힘주어 말 한다
“기다려라! 대지는 다시 희망을 잉태할 것”이라고
긴 수면 속에서 다시 솟는 용기는 그 움츠림이 촘촘하다
더 부수고 더 깨질 것이 없어 행복하다
아플 것도 울 것도 없어진 날에
타훼는 언제 적 기억 속으로 화난 듯 나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