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 소묘

박산 2021. 12. 19. 09:18

윤영호 희말라야 사진첩 중 「동행」

 

혼술 소묘 ㅡ

종종 단골 해장국집 가는 시간은
일부러 손님 뜸한 아침 11시 전후다
대다수가 나 같은 혼밥이라 편하다

한 쉰 먹었을 얼룩얼룩한 작업복 차림의 사내가
세상 고민 혼자 다 뒤집어 쓴 표정으로
터덜터덜 들어와 앞 테이블 의자에 털썩 앉자마자

"아줌마, 후레쉬 한 병에 내장탕!"

김치 깍두기가 밑반찬으로 놓이기 무섭게
물컵에 콸콸 소주를 따라 바로 목을 넘긴다

한눈에 보아도
세상에 목이 바짝 마른 생명이다
정작 내장탕은 나오기도 전에
이미 소주병은 싹 비워졌다
또 한 병의 소주병 목을 거칠게 비튼다

아침, 해장국집, 혼술, 혼밥, 두꺼비
문득 지금 이 장면이 

아련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1986년 겨울 아침
청진동 해장국집에서 내가 그랬으니까...

(2021년 겨울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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