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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치듯 살 걸

장난치듯 살 걸 ㅡ 누군가에 한 마디 말도 없이 종종 어딘가로 휙 떠나고 싶습니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고싶다는 어느 시인처럼 그리운 것들이 없어질 때까지,,, 이런 생각이 간절하다가도 아침 저녁으로 입에 털어 넣는 약봉투 챙겨야지 각종 세금 날짜 기억해야지 쥐꼬리만한 회사 업무도 신경 써야지 40년 넘은 가장 노릇 생활비도 건네야지 오늘은 왜 조용하냐 다그치는 속 없이 착한 독자님들 위해야지 이래저래 조르바처럼 살다 죽기는 애저녁에 글렀다는 생각입니다 글치만,,, 한 번 더 마음 가라앉혀 가만 생각해 보면 떠난다고 새삼 해결될 게 뭐가 있겠나요 딱 그때 해방! 그 순간 뿐이지요 이리 잘 알면서도 떠나고 싶은 건 어쩔 수 없지요 알고도 가고 모르고도 오고 죽을 것 만 같았던 지난 일들도 지나고 이만큼 살..

2022.10.10

목포는 예쁘다

목포는 예쁘다 ㅡ '목포는 항구다' 유달산 이난영 비 노래 들으며 길섶에 핀 연분홍 봄 동백만 보아도 목포는 예쁘다 말 많고 탈도 많은 구도심 언덕배기 오밀조밀 골목길 낡고 굽어진 동네에서 흑백영화 속을 걷는다 목포는 예쁘다 민어회에 생막걸리 취기로 밤바다 영산강 하구 둑 데크에 앉았는데 저만치 갓바위 푸른 빛 서리고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다 건너 조선소 크레인 불빛은 깜빡이는데 저만치 고깃배들은 숨죽인 듯 떠 있다 목포는 예쁘다 여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붕붕 뜨고 순천을 찾는 사람 많아졌다니 목포 사람들이 부럽고 배가 살살 아프단다 그럴 거 없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굳이 큰 꿈 꿀 필요 없다 헌 집 고쳐 새집 만들고 없는 길 내지 말고 있는 길 갈고 닦아 예쁜 목포 꾸미면 된다 원래 목포는 예뻤으니까..

2022.10.05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251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251】 2022년 9월 30일 7시(매달 마지막 금요일) 종로구 인사동길52번지 인사14길 詩/歌/演(02) 720 6264 쥔장:김영희010 2820 3090 /이춘우010 7773 1579 1호선 종각역→안국동 방향700m 3호선 안국역→종로 방향400m 「아내와 나 사이」 - 이생진(1929~ )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

2022.09.27

오륙도ㅡ이기대(부산 갈맷길)

오륙도ㅡ이기대(부산 갈맷길) 시 얘기 모임 후, 파전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는데 나하고 두물머리를 걸으며 담소를 나눈 적이 있는 분이 "이즘도 많이 걸으세요? 좋은데 좀 알려 주세요" 하셔서 말씀 드린 코스, 한 칠팔 년 지났을까, 걷기 20년 지기 벗들과 걸었던 부산 갈맷길 '오륙도ㅡ이기대'를 걸어 보시라 말씀드렸다. 6.5km의 안전하게 조성된 해안절벽 길을 따라 광안대교와 해운대, 달맞이고개를 저만치 보며 걷는 환상적인 트레킹 코스, 때론 가파른 절벽 계단을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넘실대는 파도에 아찔한 스릴을 느끼기도 하지만 오르막길 내리막길 내내 절벽 중간 중간에 자리한 쉼터는 농바위 같은 기기묘묘한 해안 절벽의 형상을 감상할 틈을 친절하게 내주고는 낭떠러지 절벽 사이사이에 서식하는 갈매기들 둥지를..

나의 이야기 2022.09.22

기억 저편의 인도

기억 저편의 인도 ㅡ 업무 상 비교적 여러 나라를 다녀보았지만, 변하지 않는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인구 13억의 인도다. 마지막 월급쟁이 노릇 후 2000년부터 인도에서 Psyllium Husk, Guar Gum을 수입했다. 농산물로 각각 소화기관 보조제로 濃化劑로 사용되지만 보관이나 수입 과정에서 변질되기 쉬워 클레임(하자)이 잦은 생산품이라 사전 검수(inspection)가 필수다. 아무튼 이런 문제로 인도 북부 도시 조드프르(라자스탄州)에서 생산지 비카너 북부 지역까지는 편도 5시간이 넘는 여정이라 호텔 새벽 출발로 시작됐다. 계기판이 하나도 없고 사이드 미러조차 없어 굴러다니는 게 신기할 정도의 자동차에 운전기사 포함 4인(한국인 2인 인도인 2인)이 타고 가는데, 과연 이런 자동차로 왕복 10시..

나의 이야기 2022.09.19

저승골 금두꺼비

저승골 금두꺼비 - 징검다리 건너 물소리 요란한 구수천龜水川 산 깊은 백화산 빗방울 맞으며 미끄러운 돌덩이 깔린 하천 길 푹푹 빠지는 진흙 길 조심조심 한 발 두 발 얼마간의 이슬바심 저승골 풀밭에서 오른 발을 디디려다 순간 이상한 느낌 아차! 잘못했으면 주먹 만한 두꺼비 밟아 저승 보낼 뻔했다 바짝 엎드려 미안한 눈길 보냈지만 눈도 껌벅이지 않는 모양이 ‘난 일 없으니 당신 갈 길이나 가슈!’ 미련 남아 가까이 한 번 더 보니 황금빛 금두꺼비다 뜬금없이 좋은 생각 없던 재물이 꽉 채워질 것 같았다 징검다리를 하나 더 건너는데도 현수교 건너 다시 숲길에서도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도 황금빛 금두꺼비가 있었다 * 저승골-경상북도 상주시 백화산 계곡 구수천 팔탄길 (상주 옥동서원 - 영동 반야사 월류봉 이어지는..

2022.09.17

난 머슴이로소이다

시집 《'무야의 푸른 샛별' 중, 2015 황금알》 난 머슴이로소이다 - 에헴, 게 아무도 없느냐! 소리 지를 일도 없고 그저 세파에 아부나 할 양으로 중얼중얼 나 죽었오 나 죽었오 쥐 죽은 듯이 골목이나 기웃거리다 막걸리 한 사발에 고기 한 점 씹어 쪼꼼 커진 간덩이로 내뱉는 분노 에이 엿 같은 세상! 쌍시옷 섞었다가 누구 듣는 이도 없는데 움츠려 휘휘 사방을 둘러본다 해가 중천에 떠서야 이리 오너라 아침 늦잠은 상전들의 특권 깨우는 이 없어도 깜깜 새벽 발딱발딱 일어나 개꿈 해몽에 들이대는 어설픈 주역 64괘 새벽을 서성이는 난 머슴이로소이다

2022.09.12

셋째 번 단추

시집 《'구박받는 삼식이' 중, 2011 우리글》 셋째 번 단추 - 오래전 미국 회사 일을 할 때 얘기입니다 부모가 러시아계라는 아시아 담당 마리나는 항시 가슴에 셋째 번 단추를 상대방이 보기 좋게 풀어 놓았지요 내가 보기에도 그녀의 크고 예쁜 가슴은 매력 덩어리였어요 움직일 때마다 그 흔들림에 탄력이 넘쳤지요 점잖지 못한 욕망을 잘 억제해야 군자라고 아주 잘 교육받고 자란 이 한국 촌놈은 그녀와 마주한 미팅 시간이 고역입니다 정면으로 마주 보고 얘기를 하자니 그녀의 가슴에 자꾸 신경이 쓰였지요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난감했지요 홀로 얼굴 붉히다가도 내심은 여성의 아름다운 가슴을 보고도 무감각하다면 그건 죽은 놈이나 진배없다고 스스로 자위했지요 어쨌든 매번 정면으로 마주 보지 못하는 부자연스런 나를 ..

2022.09.06

詩도 그렇긴 하다

시집 《'무야의 푸른 샛별' 중 2015 황금알》 詩도 그렇긴 하다 -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스무 해도 훨씬 지난 얘기지만 어찌어찌 머리 얹으려 골프장엘 갔다 처음 밟는 잔디에 잘 맞을 리 있나 그래도 칭찬 일색이다 어쩌다 롱 퍼팅이 소 뒷걸음에 똥 밟은 격으로 들어갔다 타고난 골프 천재다 - 나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스윙 폼이 타고났다 - 열심히 치라는 얘기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러면 그렇지 내 뛰어난 운동 신경이 어디 가나 세 살 바보가 되어 우쭐했다 내게 시를 보여주는 이 몇 있다 몇 개의 단어 쓰임이 상쾌하고 문장 몇이 조화롭다 아니 어찌 이런 멋진 표현을 - 읽는 맛이 너무 좋다 - 시적 소질이 풍부하다 - 시도 그렇긴 하다 공치는 일과 매한가지로 누군가 칭찬해주고 용기를 주어야 쓸 맛..

2022.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