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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을맞이는 안녕하신지요?

당신의 가을맞이는 안녕하신지요? ㅡ 창문 열어 맞는 새벽 공기가 제법 찹니다 불현듯 오곡백과 풍등한 한가위가 저만치 다가옴을 느낍니다 어제는 말입니다 병어 밴댕이 잘 섞인 모듬회 한 접시 놓고 얼굴에 검버섯이 유난히 듬성거리는 벗과 눈가 주름이 가을 햇살에 은빛 나는 벗과 유명 브랜드 티셔츠가 타이트하게 가슴에 불거진 벗과 이 얘기 저 얘기로 한담閑談을 나누었습니다 하루 자고 일어나 생각해보니 그게 다 값진 인생이었습니다 태풍이 온다는데 아침 하늘은 높고 푸릅니다 당신의 가을맞이는 안녕하신지요?

2022.09.01

가엾은 영감태기

가엾은 영감태기 - 조막만한 몸도 덩치라고 어깨 벌려 걷는 팔자걸음이나마 제멋에 취하고 내가 왕년에로 시작하면.... 유도했다 태권도 유단자다 산에 가면 날다람쥐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간에 이 허세 달고 사는 기분도 괜찮은데 예순 훌쩍 넘어 그가 아쉬운 건 딱 하나 외롭다는 거다 의리 상실하고 5년 전 먼저 소풍 떠난 마누라가 밉다 하나 있는 딸년을 작년에 여의고 나니 집에서 밥 해 먹는 일도 궁상맞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문화센터 스포츠댄스 배우러 갔다가 반년 만에 교양 만점 배 여사를 만났다 붉고 짙게 바르는 화장이 아니어서 좋고 꽉 끼는 바지 대신 치마를 입으니 보기에 여유로워 좋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함께 마셔서 좋고 톡 까놓고 통성명은 안 했지만 얼핏 맞춰 보니 나 보다 한 살 어려 또래인 것..

2022.08.27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250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250】 2022년 8월 26일7시(매달 마지막 금요일) 종로구 인사동길52번지 인사14길 詩/歌/演(02) 720 6264 쥔장:김영희010 2820 3090 /이춘우010 7773 1579 1호선 종각역→안국동 방향700m 3호선 안국역→종로 방향400m 「 나의 도(島)는 나의 도(道)다」 : 이생진 -2022.7.19. 맑음(폭염) 94세! 이 나이에도 밖에 나가 뛰어놀고 싶으니 탈이다 섬으로 가자 배 타고 울릉도로 들어가 나리분지쯤에서 하늘을 보자 나의 길은 하늘에 있으니까 지금 나는 죽도와 관음도가 보이는 석포 둘레길 깊은 산 속에 와 있다 죽도도 관음도도 꼼짝 않는다 나도 섬처럼 꼼짝 않고 있다 쌩도(生島)! 그게 나다 * (1929~ ) 시 앞에서는 결사적인 떠..

2022.08.21

갓밝이

시집 《구박받는 삼식이, 2011 우리글》 갓밝이- 마당 자동차 시동 걸리는 소리가 달의 사라짐을 재촉했다 어둠을 몰아내고 있는 하늘 구름 기지개가 촉촉했다 화단 이슬 잔뜩 머금은 잎새 하나 파르르 떠는 모습 흐릿하게 보였다 고양이가 내는 음전한 소리에 새들은 긴장했다 바쁠 게 없는 게으른 먼동 아파트 꼭대기 유리창에 붙었다 부지런한 자 나지막이 부르는 희망의 노래 소리 저만치 들렸다 * 갓밝이: 새벽 태양이 떠오르는 시점

2022.08.16

서울에도 세렝게티의 치타가 있다

서울에도 세렝게티의 치타가 있다 ㅡ 붐비는 지하철에 서서 가는 중에 문뜩 떠오른 詩想이 있어 스마트폰에 손가락 두드려 쓰고 있는데 바로 앞자리 역시 스마트폰에 코 박고 있던 젊은이가 가방 챙겨 분주히 내리려 일어나길래 무심코 빈자리에 앉으려는 찰나에 어디선가 갑자기 들이닥친 얼핏 예순은 안 넘었을 외모에 절대 빠르지 않을 듯한 넙대대한 아줌마가 세렝게티 초원의 치타가 톰슨가젤을 잡듯이 잽싸고 저돌적인 몸집으로 날 툭 밀치고는 냅다 엉덩이를 디밀었다 앉고 못 앉고는 그리 억울할 일은 아니지만 얼떨결에 졸지에 밀쳐진 나는 시끈한 허리 한 쪽을 연신 주무르고 있는 데도 전혀 모르는 척 스마트폰 속 트로트 동영상에 빠져있다

2022.08.12

강남 룸싸롱

시집 《'노량진 극장' 중, 2008 우리글》 강남 룸싸롱 - 웃자고 해도 따지고 보면 웃을 수 없는 곳 그래도 사악한 웃음이 함지박으로 터지는 곳 ‘돈’이면 모든 게 다 내 세상인 곳 탤렌트보다 영화배우보다 얼굴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들의 수용소 많이 배웠다 하고 잘 나간다 하고 고상하다 하고 무슨 사장입네 하고 무슨 회장입네 하고 무슨 의원입네 하고 무슨 영감입네 하고 무슨 원장입네 하고 무슨 박사입네 하고 인격 좋다 하며 여기저기 찍어 바른 번뜩이는 풍채로 자빠질 정도 점잔 떨며 행세하다가도 여기 룸싸롱에서는 한 놈도 안 빼고 모두 다 거리에서 접 붙는 ‘개놈’이다 오로지 방탕하게 즐기는 ‘남여상열지사’ 만 가득한 곳 사랑은 개나발이고 순정은 묵사발이다 그냥 성에 불만인 사내들의 일방통행 길에서 노..

2022.08.10

運7技3

運7技3 ㅡ 친구야! 새삼스럽게 말이야… 거 뭐 이제 와서 지난날이 억울하다 어쨌다 너무 속 끓이지 마시게나 뻐꾸기 우는 소리도 다 사연 있다는 거 알고도 남을 나이 아니겠나 줄 잘 못 선 게 어찌 내 탓이며 얻어터지며 살아온 내력도 어찌 내 탓 뿐이런가 분노하고 억울해 하지 마시게나 가만 따져 내게 물으면 나만 모르고 있는 내 탓이 사실 크다네 혹여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만의 콤플렉스를 純白의 우등한 자만으로 착각하고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그런 거 저런 거 그냥 다 잊으시게나 아직 팔다리 성성한 이제부터라도 편하고 또 편하게 運7技3 이리 생각하고 사시게나

2022.08.05

잊어버렸다

시집 《노량진 극장 중, 2008, 우리글》 잊어버렸다 - 우연히 본 내 손등 주름이 쪼글쪼글한 게 영락없는 영감님 손이다 봄 타서 그렇지 하고 잊어버렸다 귀밑 흰 머리카락이 왜 이리 꼬불거리고 일어나는지 그러다 말겠지 하고 잊어버렸다 눈가 다크서클이 기분 나쁘게 조금씩 퍼지면서 세력을 확장해도 거울에 뭐가 끼었나 하고 잊어버렸다 운전하다 뒷좌석 물건을 꺼내려 팔을 돌렸는데 삐끗 하더니 고장이 났다 많이 아프지만 그러다 말겠지 하고는 잊어버렸다 길가다 낯이 아주 익은 사람 만나 반갑게 악수하고 헤어졌는데 새삼 ‘저 사람 누구지? 누구더라?’ 기억이 없다 내 친구도 그렇다고 걱정 말라니 잊어 버렸다 오줌발 힘없어 숨 몰아 시간 끌다 질질 나오니 짜증난다 집안 형이 그러는데 다 그런 거라기에 잊어버렸다 아파..

2022.08.02

얘, 목사님아!

얘, 목사님아! - 나이 일흔이 코앞인데 얘를 만나면 나도 얘가 됩니다 얘가 LA에서 목사 은퇴했으니 반은 도사 꽈(?)로 여깁니다 그럼에도 얘를 만나면 열댓 살로 돌아가 야! 너! 심지어는 이시키! 소리도 슬금슬금 나옵니다 시 쓴다는 얘인 내가 원로 목사님께 이러면 안 되는데… 사실 쬐꼼 미안합니다 목회가 있다고 갑자기 서울 들어와 필동면옥 냉면이 너무 먹고 싶다 해서 남산자락에서 평양냉면에 만두를 먹는데 너무 급하게 후루룩 후루룩 체할 거처럼 먹어 糖도 높은 사람이.... 얘 벗은 은근 걱정이 되어 "얘야! 목사님아! 좀 천천히 드셔라! 누구 쫓아오는 이 없으니! 같이 먹는 내가 불안해!" "아이고 미안! LA에는 이렇게 슴슴한 맛 나는 냉면이 없어 글구…없이 자라 그런지 아직도 먹는 게 급하고!" ..

2022.07.29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49

【-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49 -】 2022년 7월 29일 7시(매달 마지막 금요일) 종로구 인사동길52번지 인사14길 詩/歌/演(02) 720 6264 쥔장 : 김영희010 2820 3090 /이춘우010 7773 1579 1호선 종각역→안국동 방향700m 3호선 안국역→종로 방향400m 꽃모닝 - 첫새벽 목청 보이는 웃음 더 크게 보이라 다그치지도 않고 바삐 진료 시작한 부지런한 벌들 “요건 더 닦아야겠고” “흐음 이건 쓸 만하군” “으아하~‘ 하품 인사도 받는다 뚜뚜따따 크게 불어 댈 필요도 없다 부지런한 이에겐 눈감아도 들린다 라데츠키 행진곡 힘찬 첫발 함박웃음으로 새벽 열어 주는 나팔꽃(morning glory) 꽃morning! * 양숙: 시인, 『인사島 무크지』 발행인 【2022년..

2022.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