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덫

박산 2020. 9. 17. 10:30

「귀향」 (김명옥 그림)

 

시집 「무야의 푸른 샛별」 70쪽

 

청춘의 덫

 

 

벌어 먹고사느라

늘 시간에 쫓기는

무모한 청춘을 보냈던 내가

언제부터였던가

쌓이고 쌓인 그 시간이

으로 내어 준 세월 덕택에

이젠 내가 지배하는 시간에서

꿈에도 그리던 낮술을 마신다

 

술을 좋아하는 게

무엇보다 큰 이유이기도 하지만

역시 시간에서 해방된 유유상종의

몇 안 되는 벗이 있음이다

비틀거릴 정도로 낮술 마시기엔

기력 쇠했음을 잘 아는 처지이고

그리 막갔던 청춘은 없었기에

 

소풍 떠난 지 오랜 아버지들이 그랬듯이

"딱 반주 한 잔씩!" 을 버릇처럼 외친다

이제껏 낯설었던 낮 커피를 마신다

국밥에 씹혔던 파 마늘과

막걸리 소주 냄새를 헹군다

엽차 한잔에 레지 눈치받았던 다방보다

셀프라는 독립성에 몇 갑절 편하게 담소한다

누군가에 보고할 것도

누군가에 굽실거릴 일도 없다

카페베네 파스쿠치 스타벅스 이디아 단골집이 늘었다

이름을 막 부르기도 어렵게 늙어버린 얼굴들

조사장, 산청 선비, 장군이, 석순이 등

무수히 변모한 세상임을 잘 알면서도

정작 자신의 변모는 인식 못 하다가

이 얼굴들에 늘어가는 검버섯을 보고는

고단했던 시절 청춘의 덫이 놓였던

바로 그 흔적이련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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