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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루투갈에서 스치는 인연 (포3 파두)

포루투갈에서 스치는 인연 ㅡ  여행이 원래 그렇다  슬픈 사랑의 세레나데, '코임브라 파두 공연장'   아내는 맨 앞자리 앉았다 나는 두 번째 칸 바로 뒤에 앉았다   둘 다 옆자리가 비었다 조금 늦게 온 백인 부부가 사이사이 앉았다 그의 아내와 내 아내가 함께 앉았다 내 옆자리에 앉은 흰 머리칼에 흰 턱수염이 덥수룩한 남편이 물었다;ㅡ Why don't you sit with your wife?        왜 아내와 안 앉아요?  ㅡ I don't really like her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일순간 앞뒤에 앉은 이들까지 모두 함께 웃었다 미국 뉴저지에 살고 단체 관광으로 왔다 뉴저지에는 한국인이 많아 친근하단다 호박엿 홍삼 캔디 몇 개와 초콜릿 몇 개 나누고 공연이 끝난 후 주최..

2024.10.31

노천카페에서 (포2)

노천카페에서 ㅡ  상벤투스역 앞 한낮 시끌벅적한 노천카페에서 여행자 발품 좀 풀려고 샌드위치에 생맥주를 마셨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또 아프리카 어디 어디 언어들이 질서없이 내 귀를 들고난다  여기서는 내 언어를 하는 이가 없다  피부도 각양각색이다  검고 아주 검고희고 아주 희고  나는 검지도 희지도 않다  아까부터 좁은 테이블 여기저기 사이사이 손 내밀며 구걸 중인 여성이 보기 딱해 1유로 건네니, 한술 더 떠 주는 김에 1유로 더 달라 검지 쭉 펴며 죽는시늉이다  호시탐탐 내가 남긴 샌드위치 부스러기를 노리고 있던 비둘기란 놈이 후다닥 테이블을 어지럽히고 달아났다  내게 무관심한 언어들은, 색을 달리한 각각 높이의 코 아래 입을 통해 제 말들만 하고 있다  그럼에도 전혀 고독하지 않고 지..

2024.10.25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76‘(274+275)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76‘】(10월 25일 6시 30분 마지막 금요일) 종로구인사동길52번지 인사14길詩/歌/演(02)7206264쥔장:김영희 01028203090/ 이춘우010777315791호선종각역→안국동방향700m3호선안국역→종로방향400m  * 276 낭송 예정자:   김미희 김효수 유재호 조철암 김중열 이원옥 김경영 박하(박호남) 선경님 박산 이생진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275’ 스케치】(9월 27일 6시 30분 마지막 금요일)  1. 구인사 : 낭송 김미희/시 이생진 - 꿀벌 구인사(구인사) 깊은 계곡불전 앞 자판기 두 대커피에 맛들인 꿀벌들가을엔 코스모스 들국화도 많은데종이컵을 따라다니며 구걸하는 꿀벌들수려한 산중에서 꽃에 핀 꿀을 따지 않고종이컵에 묻은 설..

2024.10.19

기도하는 도시 (포1)

기도하는 도시 ㅡ  비 오시는 아침 이국의 길을 걸었다  중세로 통하는 門 ‘아르코 다 포르타 노바’를 지나 동네 사랑방 카페 아르코에 갔다  이른 시간 낯선 이방인의 방문에 살짝 당황한 브라운 헤어 쥔 아줌니, 마리아! 마리아! 딸을 불렀다 따뜻한 에스프레소 1유로 나타 0.8유로, 직전 도시의 비싼 물가와 비교됐다  빗줄기가 세차졌지만 나그네 발길은 멈추지 않았다  현재를 외면한 온통 과거인 브라가 대성당에 들었다  벽화, 이끼 낀 석물, 천정의 그림들, 황금빛 파이프 오르겐 등과 침묵의 수도자 같은 방문객들 모두가 경건했지만  모든 이들이 기도하는 이 도시에서 니체주의자인 나는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  유일하게 힘차고 우렁찬 종소리에 발길을 돌렸다  날이 개기 시작했다  아담한 ‘산타 바바라 광장’에..

2024.10.14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한 여섯 살 먹었을까  노란 날개 달린 발레복 입은  예쁜 여자아이가  빨간 브라우스 입은 예쁜 엄마와  룰룰랄라 버스에 올라서는  내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아이가 쫑알거리는 말이  “난 할머니가 너무 좋아  할머니 오시라고 전화해야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엄마가 하는 말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 시집 《가엾은 영감태기(2024,예서)》 중   * 시니어들의 애환을 노래한 시집 『가엾은 영감태기』가 MZ세대 포함 3, 40대의 공감을 얻어 기쁜 마음이 큽니다.

2024.09.15

알고리즘 우롱하기

알고리즘 우롱하기 ㅡ지하철 버스로 종로 뒷골목 대폿집이나 다니다가  잠실 L 호텔에서 스테이크를 썰었다  영등포시장 순댓국밥집에서 룰룰랄라 막걸리를 마시다가 서교동 등심 한우집을 가서 27만 원을 긁었다 동대문시장에서 감색 3만 원짜리 페도라 모자를 샀는데L 백화점에서 68만 원 주고 명품 지갑을 샀다    수준 파악이 헷갈린 알고리즘이 자꾸 묻는다  그 호텔 어떠냐고 그 식당 어떠냐고 그 백화점 어떠냐고   절대 대답을 안 했다   너도 궁금한 게 있어야지 다 알려 하면 다친다!

2024.09.10

영허(盈虛)

=영허(盈虛)   1. 위안(慰安)  아파하지 마시게  그럴수록 더 아프다데  슬퍼하지 마시게  그럴수록 더 슬프다네  아프다고 마냥 울다간 눈이 빠질 것이고  슬프다고 넋 놓다간 혼(魂)이 빠질 것이네  달도 차다가 기울고  태양도 비추다 사라지듯이  잿물 삭여 잿빛 우려내듯  조금만 기다리고 조금만 참아야지  어차피 흐르는 건  모났다가 죽어가는 것이  인생살이 아니런가    2. 동감(同感)    알고 있네, 나도 알고 있다네  살다 보니 맥없이 엎어져  몇 바퀴 돌아 뒹굴다 깨지고  흐르는 핏물도 맹물인가 하였고  혼 빼고 앉았다가  잠시간의 제정신에  와락 울고 싶어지는데  말라 나오지도 않는 눈물 콧물을  배출도 못하는 서러움은  왜 이리 야속도 한지  시간은 ‘세월’이라는 풍류로 포장되어 잘..

2024.09.05

엇박자도 박자다 (부제: 김중열)

엇박자도 박자다(부제: 김중열) ㅡ  이제는 전국적으로 제법 소문난 인사동 시낭송 모꼬지 『진흠모』 건배사  됐어!, 됐어, 바다가 보이면 됐어!, 됐어!(합창) 됐어!, 됐어, 바다가 보이면 됐어!, 됐어!(합창)  「인사島」 모꼬지에서 힘차게 외치는데 직선을 싫어하는 김중열 시인은 간혹 간혹 사이사이 엇박자를 놓는다 에이! 여기저기 막걸리 투정 소리 들리지만 그래서 『진흠모』는 더 합심으로 외친다 더 나은 외침을 위한 엇박자 장단이 48년생 그를 귀엽게 만드는 순간이다  시 씀에 더하여 ‘톨카소’라 외치며 그림까지 그리는 엇박자 인생에 진정 축복 있으시길! 엇박자도 박자다

2024.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