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강

박산 2022. 10. 30. 08:35

창경궁 2022 秋 (윤영호 찍음)

 

시집 《무야의 푸른 샛별 중, 황금알 2015》

 

도시의 강 - 

 

어둠이 찾아와

불빛이 잉잉거렸다

다리 위 술 취한 자동차들이

별 몇 개씩 따고 지났다

 

물고기 두 마리가 펄떡 둔치로 뛰어올라

입술 붙은 연인의 가슴에 각각 붙어

비늘이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할딱거렸다

 

누군가 집어 던진 스마트폰 동영상이

제멋대로 누워 켜지더니

사라진 모래톱을 꺼내 찍기 시작했다

 

저만치서 뿔 달린 검은 소 한 마리가

딸랑딸랑 워낭소리로 다가오다

길이 갑자기 사라지자 하늘로 날았다

 

어둠 물결 속 한옥 기왓장들이

이끼를 잔뜩 앉힌 채로 둥둥 떠다니다

바람이 몰고 온 나트륨 조명에

각진 콘크리트 덩이로 변했다

 

아까부터 어정어정 강을 바라보며

검은 옷과 흰옷을 순간으로 갈아입던

수염이 긴 할아버지가 홀연히 사라졌다

 

하늘 향해 울부짖는

누군가의 절규가 애달프게 들렸지만

지상의 풍경에 익숙한 강은

미동도 없이 딴청이다

 

지상에서 만들어진 빛의 유혹으로

별들이 쏟아져 첨벙첨벙 빠졌지만

살아나온 별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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