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지은 시》 74쪽
「유전遺傳」
관악산 산행이 하루의 첫 일과였던 늘그막 아버지
친구로부터 걸려온 따르릉! 첫새벽 모닝콜
서울대 입구 어디서 만나고 오늘 누가 온다 했고
아침은 어디서 먹고 찻집은 어디로 가고……
통화 중에 간간이 들리는 목 칼칼한 아버지 웃음소리
등산복 약수통 배낭 챙기는 분주한 어머니 치맛단 소리
대청마루 서까래에 붙어 있던 고요가
시나브로 쪽마루 타고 쫓겨나
건넌방 거쳐 아랫방 문풍지를 붕붕 뚫더니
끝방에서 곤히 자고 있는
내 이불깃에 들어 부서졌다
아버지 소풍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시 씁네!’ 하는 그럴듯한 명제로 새벽 맞는 나는
시 몇 줄 긁적여 새벽잠 사라진 벗들과 문자질이고
오늘은 무얼 하고 누굴 만나고 무얼 먹을지
아버지보다 더 많은 새벽 수다를 떨고 있지만
대청마루 서까래도 쪽마루도 문풍지도 없는
콘크리트 아파트 속에서는 깨질 고요조차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