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에서 날아온 시
'등대의 말은 시다' - 이생진
오른쪽엔 하얀 등대
왼쪽엔 빨간 등대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고 서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멀쩡한 날 하루 종일 마주서서
말없이 지내기란 답답하겠다
오른쪽엔 하얀 등대
왼쪽엔 빨간 등대
흰 등대에선 흰 손수건이 나오고
빨간 등대에선 빨간 손수건이 나올 것 같다
오늘은 그들 대신에 내가 서있고 싶다
여의도 어느 빌딩 속에 시가 날아들었다
D증권 초보 애널리스트 스물여덟 먹은 김수영 양은
한강 공원이 내려 보이는 19층 화장실에 앉아
이생진의 시집 ‘거문도’를 읽다가
물 내리는 소리가 파도 인양 하였다
여의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 속의 거문도다
63 빌딩 앞 흰 등대에선 흰 휴지가 나오고
밤섬 빨간 등대에선 빨간 휴지가 나올 것 같다
거문도 하얀 등대가 여의도에서 중얼 거린다
"멀리도 날아 왔지
그런데 왜 여긴 날 보아주는 시인이 없지"
이 소릴 엿들은 김수영 양 엉덩이가 공연히 빨개졌다
(박산 시집 '무야의 푸른 샛별' 16~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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